이제서야 생각해보는 엄마의 마음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급식실 리모델링 공사 관계로 잠시 도시락을 싸가야 했던 시기였다. 엄마는 수험생 딸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새 밥을 짓고 딸이 좋아하는 각종 반찬을 만들었다. 반찬통 세 개와 밥통 한 개로 구성된 보온 도시락에 엄마의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등교하는 내 손에 들려 보내고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꼭 이렇게 물으셨다.
"딸, 오늘 학교에서 도시락 맛있게 먹었어?"
장조림이 짜진 않았는지, 감자볶음이 약간 덜 익지는 않았는지, 그 반찬들은 친구들과 나눠먹었는지, 엄마의 반찬을 먹은 친구의 반응은 어땠는지, 엄마는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학교 수업에 이어 학원 수업까지 듣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심한 딸이었다. "응. 맛있었어." 같은 단답 후에 빈 도시락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엄마의 도시락을 먹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허겁지겁 일어나 출근하기 바쁜 딸에게 아침으로 먹으라고 주먹밥을 싸주시거나 때로는 점심 도시락도 싸주셨다. 고등학생 때 엄마의 도시락을 먹었던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엄마의 질문은 여전했다.
"딸, 오늘 회사에서 도시락 맛있게 먹었어?"
이제 나는 회사 동료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가져오면 "와- 부러워요. 나도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씩 친정에서 가져온 밑반찬을 담은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엄마의 도시락을 추억할 뿐.
며칠 전, 잠들기 전에 남편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늘 회사 밖에서 점심을 사 먹어서 이제는 새롭게 찾아갈 식당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에게 내일은 점심 도시락을 싸줄 테니 들고 가라고 했다. 출근 전, 조금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밑반찬을 만들어 출근하는 남편의 손에 처음으로 도시락을 들려 보냈다. 내가 만든 밥을 맛있게 먹고 오늘 하루도 잘 보내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몇 해 전,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준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점심시간이 점점 가까워오자 내 도시락을 열어봤을지, 맛은 어땠을지, 동료들과 반찬은 나눠먹었을지 궁금했다.
"준아, 오늘 회사에서 도시락 맛있게 먹었어?"
카톡-
점심 도시락을 잘 먹겠다는 남편의 메시지와 함께 인증샷이 도착했다. 반찬이 짜지는 않은지, 모자라진 않았는지, 동료들과 나눠먹었는지 나의 질문들이 우리의 카톡창을 빼곡히 채웠다. 엄마의 도시락이 떠올라 동시에 마음이 몽글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