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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Oct 17. 2021

'데드라인'이라는 이름의 미끼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에 대해서

"리온아~ 간식 줄게!"

천방지축 우리 집 강아지 리온이를 세상에서 가장 말 잘 듣는 강아지로 만드는 한 마디. 우리 가족의 평화로운 식사나 요리 중인 엄마를 방해할 때는 물론, 오른손/왼손/엎드려/점프 따위의 개인기를 섭렵하게 할 때도 리온이를 움직이는 건 오직 '간식'뿐이다. 지난 주말, 간식으로 리온이를 훈련시키다가 문득 고도로 집중한 그의 강인한 눈빛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랜 "기다려"로 흐린 눈을 하다가도 간식을 보여주면 이내 정신을 집중하는 그. 훈련을 끝내고 리온이의 간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에게 '간식'이란 흐트러진 집중력을 극강으로 몰입된 집중력으로 만들어주는 유인책이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지난 주말, 외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번 달 나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나)

"나 이번 달에 영어학원 등록했어. 코로나 시작하고 못 다녔으니 거의 1년 반만이네..."

"월간 독서모임도 시작했어! <<메모 습관의 힘>>이라고 자기 계발서인데, 혼자서는 절대 완독을 못할 것 같아서 말이지..."

"아참, 요즘 글을 너무 안 써서 일주일에 한편 씩 에세이 제출하는 모임도 신청했어"


(남편)

"흐음- 역시 자기는 세팅된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일하는 업계에는 일하기 전에 장비부터 빵빵하게 세팅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정작 일할 때 보면 잘 쓰지도 않는데 말이야. 옛날에는 솔직히 그런 사람들 보고 욕 많이 했었는데(크큭). 근데 널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좀 이해하게 됐달까.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장비를 세팅하는 것부터가 그 일을 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 네가 뭔가 시작하려고 하면 학원이나 모임부터 알아보는 것처럼. 그런 환경이 주어져야 움직이는 사람들한테는 환경 세팅이 중요한 요인이니까."


오...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환경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욕망과 계속 늘어지고 싶은 게으름의 욕망이 비례하는 타입인지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종의 미끼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 미끼란 어찌 됐든 목표한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하는 '환경'이다. 그리고 그 환경 안에 '데드라인'이라는 장치가 있다면 효과는 더 좋다. K장녀로 살면서 쌓은 책임감 덕분에, 기한 내에 해야 하는 것은 어찌 됐든 꼭 해내고야 마는 편이니까.


벌써 10월, 새해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 해내지 못한 일들이 자꾸 떠올라 이번 달은 스스로에게 세 가지 미끼를 던져주었다.

첫째, 일주일에 두 번있는 영어학원 수업을 90% 이상 출석하고 숙제는 꼬박꼬박 한다.

(*출석 횟수 미달성 시, 회사 어학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숙제를 안 하면 다음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둘째, 독서모임의 규칙대로 매일 일정한 분량을 읽고, 자정까지 필사한 내용을 인증한다.

(*1회 이상 미달성 시, 보상 포인트를 받을 수 없다)

셋째, 주에 한번, 마감기한이 있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다.

(*미제출 시, 참가비를 날리는 꼴이 된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데드라인'이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 데드라인 덕분에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먹었던 일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미루고 싶던 일을 기한 내에 끝내고 나면, 계획한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나 무기력함 없이 나머지 시간을 달콤하게 보낼 수 있다. 내 시간을 더 잘 쓰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데드라인이라는 미끼를 던져줘야 한다니. 이 상황이 웃프고 때로는 나를 무척 피곤하게 만들지만, 현재로서는 마음먹은 일을 실행하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한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문 물고기가 또 다른 물고기에게 먹히고, 또 다른 물고기에 먹혀 한 마리의 물고기 뱃속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가 들어있는 장면을 신기하게 본 적이 있다. 내가 던진 미끼가 또 다른 미끼가 되어 언젠가 팔딱팔딱 싱싱한 대어를 안겨다 줬으면.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미끼를 던졌고, 무사히 그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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