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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Oct 25. 2021

양말들아, 나의 겨울을 잘 부탁해!

겨울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드디어 주말이다. 날씨 어플을 켜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이다. 환기를 할 겸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이 앞머리를 훅 스친다. 아직 잠이 덜 깬 탓에 잠옷 차림으로 잠시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오분쯤 지났을까, 차가워진 코끝만큼 발끝도 차가워졌다. 아, 겨울이 오고 있다.


‘어우- 발 시려. 오늘은 미뤄둔 양말 빨래를 좀 해야겠다!’


옷장 속 양말 칸에 있는 여름 양말을 모조리 꺼냈다. 날씨가 추워지면 신을 요량으로 지난여름 성수동 양말가게에서 산, 아직 택도 뜯지 않은 새 양말들까지 전부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얇은 덧신부터 두터운 털양말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 속에는 모든 계절이 함께 뒤섞여 돌아갔다.


빨래가 몇 분이나 남았으려나. 확인 차 다가선 세탁기 문에는 열심히 돌아가는 빨래통을 벗어난 여름용 덧신 한 짝이 붙어 있었다. 무게가 가벼워서 튕겨 나온 탓이겠지만, 문득 토이스토리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이 빨래가 끝나면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옷장 속에 처박혀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지난 계절에 미련이 남아 튕겨 나온 건 아니었을 까? 마치 '안 쓰는 장난감 박스'에 들어가게 될 운명을 직감하고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철 지난 장난감처럼.


추워지기 전에  많이 놀러 다닐 .  아직 가을도 제대로  즐겼는데. 이렇게 갑자기 겨울이라니!!’  또한 지나가버린 계절에 미련이 한가득 남아있다. 일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 인지라 낮이 짧아지는 계절이 오는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날씨가 추워지면 움츠러든 어깨만큼이나 마음  구석도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연말에 다이어리를 보며  해를 돌이켜보면 , 여름, 가을과 함께한 달에는 이것저것   많은데 추운 달이 다가올수록 아무것도 써넣지 않은 빈칸이 많아지는  확인할  있다. (애석하게도,  패턴은 매년 한결같다)


이번 겨울은 왠지 무기력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데... 건조기 안에서 뽀송하게 마른 양말을 개다 보니 '양말'이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하는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서면 늘 걸었던 길도 왠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 되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양말로 꽉 채운 겨울을 보내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진 겨울을 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예쁜 새 양말을 더 사고 싶어서 구실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런 이유라면 또 어떠랴. 어둡고 칙칙한 이 겨울에 예쁜 양말이 주는 작은 기쁨이라도 생기면 그걸로 된 거다 싶었다. 곧바로 29cm 앱을 열고 양말 치고는 조금은 비싸게 느껴져 장바구니에 넣어 두기만 했던 양말들을 한 번에 계산했다. 나처럼 겨울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건네고 싶은 양말도 함께.

“새 양말들아, 나의 겨울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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