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감수성] K의 얼렁뚱땅
문득 건물에 비친 모습을 찍었습니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유리창에 비친 인간의 모습을 한 상(image)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형화됐고 감정이 없지만 사람의 모습을 한 그림자였습니다. 마치 제 모습 같았습니다.
제게 감수성이란 단어는 노력입니다. 어떻게든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뭔가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사람은 “그때는 그랬어”,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라는 말을 합니다. 저도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친구야, 우리도 새벽 내내 차 안에 앉아서 라디오 들으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는데...”
며칠 전 있었던 일입니다. 미친 척인 줄 알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길거리에 나부끼는 낙엽을 열심히 발길질해봅니다. 눈이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땅바닥에 내 발자취를 남기려는 듯 콕콕 걷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보로 바닥을 쓸면서 걷기도 하잖아요. 마침 버스를 몇 십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생기기도 한터라 이리저리 미친놈처럼 쓸고 다녔습니다. 혼자 즐거워져서 낙엽을 발로 쓸었다가 펼쳐놓기를 반복했죠. 하면서도 ‘부단히도 노력하는구나... 애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감수성에 젖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던 거죠.
감수성을 잊지 않으려,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애정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집중이랄까요. 내리는 비가 더 이상 귀찮지 않아야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출퇴근 지하철이 짜증 나지 않아야 하며, 펑펑 내리는 눈에 옷이 젖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마주하는 모든 세상이 아름다울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보고 싶은 마음'이 제가 생각하는 감수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월요일 아침의 시작은 너무 좋았습니다. J님께서 글을 올려주셨거든요. 회사에 출근해 한, 첫 행동은 브런치를 켜고 J님의 글을 조용히 읽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월요일 출근길이 기대가 될까요. 정말 오랜만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J님의 글은 너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이곳을 빌려 계속 ‘글’이란 걸 쓰는 까닭은 감수성입니다. 직업의 특성상 언제나 많은 글을 봐야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욕심이 납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아주, 작은 파장이라도 일으켰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파묻히면 생각도 안 나는 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J님과 하는 이 일들이 과장해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도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 나이지만 여전히 그 안 되는 일에 ‘꼿꼿이 버팅기는 철부지’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