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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규정 Feb 08. 2022

긴긴 인생을 준비하긴 해야 하는데.

[단상-부캐] K의 얼렁뚱땅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늘었다. 음력설을 앞두고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접했다. 조문하고자 호실을 찾으려 장례식장 모니터를 봤다.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이름 옆에 적힌 일흔(70)이라는 숫자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버님은 평생 한 직업에 종사했다. 9급의 공무원으로 시작해 외동아들(친구)에게 집 한 채와 오피스텔 한 채를 남겼다. 아버님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관련 직군에 종사할 수 있는 특수직 공무원이었다.      


 내게 남은 인생을 대략 40년으로 잡아보았다. 회사원으로 직업을 유지할 수 기간이 아주 운이 좋아야 15년이고, 현실적으로 10년 안팎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새로운 직업,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사실 지난해 말부터 ‘앞으로 40년을 위해  뚜렷하고 구체적인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친구 아버지의 죽음은 나의 남은 인생과 다가올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했다.      

 내게 ‘부캐’는 생존을 뜻한다. ‘주캐’의 하부 개념, 메인의 덧붙임이 아니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목표다. 세상 대다수 회사원이 그렇듯 창업자가 아닌 이상에야 쉰(50)을 넘기기 쉽지 않다. 임금피크제는 사회 변화에 따라 연령이 계속 높아지겠지만, 애초 박봉인 직업이라면 임금피크제를 견디기 쉽지 않다. 얼마 전 24년 차 기자 선배가 술자리에 푸념하듯 말했다. “5년 후면 내가 임금피크제에 속하는데 아들이 고2가 되더라. 지금도 박봉인데 임금피크제로 아들을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어떻게든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지.”       


 변호사, 의사, 세무사, 회계사 등 ‘사’자 직업이 오래전부터 부러웠다. 단순하게 정년 없는 삶의 안정성이 부러웠다. 나 역시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노후 준비라는 단어는 언감생심이다. 현실적으로 70대 초반까지는 안정적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부캐가 언젠가 주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 조금 어린 나이에 가족과 나의 생계를 위해 일했던 몇 년이 있었다. 남은 인생은 생계보다 내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에 PD와 기자에 도전했다. 일이 힘들어도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면 어떤 업무라도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다. 대충, 지금까지는 그런 마음의 각오를 지켜왔다. 돌이켜보면 많이 웃었다.      


 부캐의 조건은 간단하다. 내가 즐거워하면서 나이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 그런 일... 어디에 있나. 있기는 한 걸까. 고민만 하는 건 아닌지 반성도 했다. 일단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본 적도 있다. 덕분에 ‘이건 아니야’라고 돌아오기도 했다. 사실은 ‘이 일은 이것 땜에 안 돼, 이 직업은 이런 이유로 안 돼’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들기도 한다. 무작정 행동해버리는 용기를 잃어버린 탓도 있다.      

 방향성 없이 끙끙 앓을 때의 암울함이 계속된다. 찬란한 빛줄기 하나가 나를 인도하길 바라기도 한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생각으로 끝나는 명쾌한 삶의 진리를 배웠음에도 지금은 그저 끙끙거리고 있다. 무르익지 않은 것인지, 계속 한계를 두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인지 모르겠다.      


 J님은 나 홀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 “우리 이거 한번 해봐요”라며 글쓰기를 제안해 준 사람이다.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하나 넋두리 같은 글도 나를 쥐어짜고 토해내듯 쓰는 일이라 쉽지 않다. 그래도 힘이 되는 동료이자 선배인 J님이 묵묵하게 약속한 글을 써내는 모습에 끌려가듯 몇 개월간 써내려 왔다. 요즘 들어 이 또한 부캐의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한다. 여러 대체재 부캐를 찾아내지 못해 하는 변명일 수 있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작은 위로를 나에게 건넨다. 어느 날 불쑥불쑥 올라온 J님의 글에 기겁하며, 허겁지겁 글쓰기를 준비하는 올 한해가 그려진다. 연말쯤 되면 글쓰기뿐만 아니라 나도 지금보다는 영글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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