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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규정 Nov 28. 2021

과학과 땡땡땡.

올리버 색스의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읽고 - K의 시선

“자주 화가 나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짜증도 쉽게 찾아와요. 몰상식한 인간들이 너무 많거든요.”

“분노해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어디서 시작할까요. 타인의 이상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뇌 과학자, 신경학 박사, 정신과 의사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범위가 넓고 깊어질까요. 한 때, 조현병 환자 관련 기사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염려·우려·분노했었습니다. ‘묻지마 폭행’ 관련 유사 사건들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최근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골길을 따라 운전하는데 어머니가 혼잣말로 “저런 집에 살면 밤에 무서워서 어쩌냐. 나쁜 사람 들어와도 무방비네”라고 하시더군요.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살펴보니 이쁘게 지은 단독 주택들이 드문드문 서있더군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라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옆집 김장에 품앗이하고 받는 시절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새벽부터 나가셨다가 오후 늦게 겉절이 김치 한통을 들고 오셔서 함께 맛보았던 아삭함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시대라고 표현하니 ‘최근, 얼마 안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천천히 세상은 변해왔습니다. 예순을 넘은 어머니는 도시 생활 탓은 아니지만 이제는 타인을 믿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자식인 저도 그런 상황이 익숙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힘없이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해수면 상승처럼 천천히 증가하고 확대되고 멀어져 왔습니다.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건 누구나 다 쉽게 알 수 있는 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이 점차 자기 안에 갇히는 건 어떤가요. 그 주인공은 바로 나인데, 나니까 잘 모를 수 있죠. 내 옆에 서 있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한다고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당장 출퇴근길은 휴대전화를 벗어날 수가 없는걸요.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거나 꼭 필요하지 않지만 왠지 눈길이 가는 옷을 구경해요.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전 세계 1위 드라마 속 인물들이 내 집중을 요구해요. 웹툰도 봐야 하고 눈길 가는대로 기사도 눌렀다가 끝까지 읽진 못하고 돌아가기 버튼을 눌러 다른 기사들도 봐요. 쉴 새 없이 뜨는 카톡창도 대응해야 해요. 이렇게 바쁜데, 굳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나요.     


 올리버 색스의 전작들이 좋았던 건 ‘이상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며 ‘왜’ 그랬는지 알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의 직업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환자·사람의 말과 행동,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찰하고 의학적 지평을 열어갈까요. 이제는 고인이 된 작가의 글들이 좋았던 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두 “저 사람은 미쳤어”, “도저히 내 상식·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 작가만큼은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라는 위로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작가가 ‘그래도 과학이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합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의 생각이라 울림이 컸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서로에게 멀어져 가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또는 100년쯤 지난 후에 자기 안에 갇혀버린 인간의 삶을 새로운 ‘병’으로 정의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의학계는 할까요.      


 올리버 색스에게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과학과 0000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다”

헌데, 아직 000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P.s

마감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J님께서 넓은 마음으로 웃음과 함께 이해해주셔서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달은 이런 사과는 하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수상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시대가 아니라 각자의 시간에서 말입니다. 따듯한 점심 먹으며 이야기 나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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