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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an 15. 2024

마음의 온도를 높이려 빌려온 두 권의 책

 좋은 책이란 뭘까? 그냥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책이 아닐까?

 해가 바뀌자마자 친구를 보러 갔다. 근육이 소실되는 병으로 투병 중이지만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데 의식은 멀쩡해 나를 보며 자꾸 눈물을 흘렸다. 대화가 불가능해 할말이 없었다. 벌써 발병한 지 4년이 되어 간다. 그냥 눈물을 닦아주다 돌아섰다. 마음의 온도가 차갑게 식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의 온기를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아는 건 책 읽기 뿐이다. 마음이 푹 가라앉아서인지 행동도 우왕좌왕 산만해 마음의 온기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이라도 읽고 싶었다. 마침 지난 연말에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책을 빌려 두었었다. 솔직히 제목에 고양이가 있어 빌려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책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가독성이 높아 잘 읽혔다. 젊은 작가인데도 작품 완성도가 높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어린 시절부터 내게 익숙한 지명 소래 포구가 첫 단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12살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자랐다. 남양만에 제방을 쌓기 전까지 우리 동네 구포리 근처까지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거대한 갯벌이 생겼다. 지금은 모두 넓은 논으로 바뀌었지만.

 태어나 내가 처음 타 본 차도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꼬마기차 수인선이다.

 진달래가 피면 하교할 때 친구들과 일부러 근처 왕재봉을 올라갔다. 봄이면 왕재봉 주변은 온통 진달래 꽃밭이었다. 산 전체가 불그죽죽한 연분홍 꽃잔치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왕재봉 꼭대기에서는 저 멀리 꼬마 기차가 칙칙폭폭 하며 지나가는 게 내려다 보였다.

 중학교 때 교지에 실린 내 첫 소설(?)도 왕재봉이 배경이다. 어린 시절은 수인선이 다니는 야목역 주변의 넓은 갯벌과 태행산 자락 인근 여기저기에 살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제법 있다.

<권가네 이야기> 삽화로 작은 오빠가 그린 왕재골. 60년대 모내기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 책의 작가는 인천 사람이었다. 단편에 배경으로 등장한 소래 포구와 시장통 덕분에 추억 소환이 된 이유다. 추억까지 소환했으면서도 작품에 집중되지 못했다. 친구로 인해 잔뜩 의기소침해지고 상처 입은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회복되지 못한 상처와 불안정한 정서들이 뭉뚱그려 심리적으로 바닥인 마음을 더 내려앉게 만들었다. 삶에 비극이 없을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빨리 읽고 책을 반납하고 싶었다. 솔직히 너무 비극적인 장면에 대한 서술 일부는 읽지 않고 건너뛰었다.

 <인생 박물관> 표

 그리고 책 두 권을 다시 빌렸다. 내용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성공했을까? 과연 이 책들을 읽으면 바닥을 치는 불안하고 힘든 마음에 온기가 올라올까?

 그랬다. <인생 박물관>은 읽어갈수록 마음의 온기가 쑥쑥 올라갔다. 보통 사람들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온기는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친구들 모임에 나가 막 읽고 나간 <자살하러 가는 길>이란 단편을 이야기해 줄 정도였다.  아들에게 어떤 인생의 조언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인생의 조언>은 짧으니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있긴 해도 책에 실린 25편은 -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한 글들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어울렸다.

미래과거시제

 <미래과거시제>는 가볍게 읽기 위해 빌려왔다. SF 소설 전문 작가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어 가독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책은 후루룩 읽혔다. 특별히 마음의 온기가 많이 올라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빌려왔으니 완독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까지는 아니었다. 나름 흥미있는 내용이 많아서다.

 지구 중에서도 아주 작은 서울 어느 좁은 공간에 사는 내 모습이 투영된 느낌이 드는 단편 <접히는 신들>은 잘 읽히는 단편이었다. 하지만 오래전 읽은 일본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미래과거시제>는 내용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 가독성이 떨어져 보여 아쉬웠다. 제일 아쉬웠던 단편은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라는 제목이다. 오자가  너무 많아 읽다가 그냥 다음 편으로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

 

 내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좋긴 하구나 싶다. 주변 친구들이 눈 때문에 책읽기를 포기했다는데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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