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장마철이니 당연하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마트에 간 이유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아픈 친구에게 가기 위해 김치를 담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날이 선선하니 일을 하기는 수월하다.
김치거리를 배달시키고 나온 사이 빗발이 거세져 있었다. 운동화가 금새 젖어버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비 내리는 기세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았다. 살짝 망설였다.
'장미원을 거쳐 토성을 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밥 먹으러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공원 중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살짝 고민이란 걸 했다. 아롱이와 그 일당은 은토끼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끈질기게 찾아 밥을 먹이신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김치를 하기 위한 체력이 필요하다 싶어 집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오후 늦게야 일을 마치면 공원을 나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원 토성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평소에는 운동 삼아 빙 돌아가던 길을 최단거리로 서둘러 갔다. 여기저기 물 웅덩이에 오솔길마저 작은 실개천이 되어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 밥 먹으러 나오리? 하며 평소 밥 주던 곳에 다가갔을 때였다. 평소엔 제법 운동하는 사람들이 오갔는데 인적마저 끊어져 한적했다.
잘박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까만 고양이가 덤불에서 툭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어이구~ 세상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눈을 맞추더니 덤불숲으로 들어가 기다린다. 할 말을 잃었다.
밥그릇에 가득 고인 빗물과 나뭇잎들을 털어내고 물휴지로 닦아 얼른 닭가슴살 하나와 캔을 꺼내 건넸다. 촉촉이 젖어 가며 밥을 먹는 녀석을 보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삼색이를 찾아 덤불숲을 살폈다.
있었다. 큰 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다 일어서더니 눈을 맞춘다. 녀석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하루 한 끼가 맞나 보다.
사람들도 누구나 편안하기만 한 삶은 없다. 퍽퍽한 삶이 대부분이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삶이야 오죽하랴?
공원을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어쩔 뻔 했는가?
나에게 김치는 고난도의 미션이다. 오랫동안 내 별명 중 하나는 마마걸이었다. 나는 결혼하고 수십 년 동안 엄마의 김치와 장류를 얻어먹고 살았다. 아직도 나에게 김치는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빗물이 여기저기 흘러 작은 시내를 이룬 공원 오솔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하긴 그 어디에 쉽기만 한 삶이 있을까?
집에 김치라는 미션이 기다리는 데도 집앞 화단에 심긴 목화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비를 맞아 싱싱해 보여 다행이었다.
며칠 전 공동 주택 화단에서 종이 상자로 뭔가를 갈무리하시는 동네 분에게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장마라는데 집에 비가 새서 어떻게 해요?"
하던 일을 멈추시고 인사를 받아주시며 덤으로 걱정까지 해 주신다. 우리 연립주택 단톡방에 내가 올린 지붕에서 부엌 천장으로 물이 새 힘들다는 이야기를 읽으신 모양이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다며 종이 상자로 감싸시려는 게 뭔지 궁금해 슬쩍 들여다봤다.
"목화예요~" 하신다.
"아하~! 작년 여기 화단에 목화꽃 피었던데 직접 심으신 거였군요? 누가 목화꽃을 심었나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어요~"
화성 구포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내게는 목화꽃도 안면이 있다. 물론 내가 알아보는 건 꽃이나 목화솜이 맺혀 있을 때만이다. 지금처럼 잎만 있을 때는 알아보지 못한다.
작년에도 오랜만에 목화꽃을 봐서인지 정말 반가웠다. 오며 가며 한 번씩 들여다보며 목화꽃을 정성 들여 가꾸는 그 손길이 누군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런 지극 정성을 들였었다니?
목화는 이미 오래전 고인이 되신 내 막내고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막내 고모님은 27에 아이 셋 딸린 청상이 되셨다. 일제강점기 경성전기 기사셨던 고모부가 수리를 하러 전봇대에 올라갔다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막내로 둔 아들마저 갯벌에서 밀물에 쓸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공대를 다니던 아들까지 앞세우고 눈물마를 날 없었던 막내고모님. 그분은 화성 곳곳을 다니며 목화를 사들여 이불을 만들어 팔아 생활비를 보태셨었다.
재색이 곱고 마음 씀씀이만이 아니라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솜씨가 좋으셨던 막내 고모님의 눈물겨운 일생은 나에게 아릿한 아픔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때 해 주셨던 목화솜 이불을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한동안 버릴 수 없었다.
친구에게 얻으셨다는 목화 씨앗을 화단에 심어 이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목화를 대도시의 주택가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신 분 덕에 올해도 하얀 목화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편치 않은 장소지만 힘겨운 장마철을 잘 이겨내고 연분홍 환한 목화꽃을 피울 걸 상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힘내서 하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하루빨리 친구를 병상에서 벌떡 일으킬 신약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친구 남편도 보잘 것 없지만 내 김치를 드시고 힘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