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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Oct 11. 2024

살아가야 하는 일의 무게

"어!~ 어! 뭐야? 이거???"

눈앞에서 보고 있는 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까마귀가 고양이 밥그릇을 입에 물고 나무 꼭대기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고양이 고등어

 고양이 고등어에게 밥을 주고 돌아서 근처에 있는 다롱이에게 다가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겨우 1,2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왼쪽 위 부분, 까마귀가 고등어 밥그릇을 가로채 나무로 올라가 있다.

 까마귀가 유독 시끄럽게 떠들더니~. 내가 자리에서 비켜나기를 기다린 느낌이었다. 고등어는 밥을 먹다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피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을 터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밥그릇을 가로채 나무 위로 날아가 버리다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양이가 먹던 밥그릇을???


 '밥그릇이 지나가는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데 이번에는 까마귀 두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다툰다.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다.

 반포지효!

 까마귀는 부모가 늙으면 둥지에 앉혀놓고 먹여 살린단다. 키워준 은혜를 그렇게 갚는다는 고사성어. 그래서 굳이 밥그릇을 통째로 물고 가 저렇게 다투는 걸까?


 살아가야 하는 일의 무게가 훅 다가왔다.


 공원 숲길을 산책하다 송충이 같은 벌레를 발견해 놀라는 일이 간혹 있다. 그때마다 '공원 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람들 출입이 거의 없는 새벽이면 살충제 차가 공원 곳곳을 돌며 소독을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까마귀나 까치 등 새들의 먹이가 부족해진 이유가 나같은 사람들의 이기심에 있는 데.


 나무 위에서 다툼을 벌이는 까마귀들을 피해 다롱이와 귀요미 밥을 주고 그 옆에 지켜서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밥을 먹다 빼앗긴 고등어는 인근 억새숲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고등어도 사랑이 못지 않게 다롱이를 무서워한다.


 다음 날.

 하늘공원 배수로 쪽으로 고등어를 데려가 밥을 먹이고 지켜서 있을 때였다.


 까마귀의 지능이 조류 중에서도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까마귀가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깍깍거리며 내 머리 위를 마치 스텔스 폭격기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그 행동에 왜 녀석의 짜증이 다 느껴지는지???


 귀요미 자리로 가니 스텔스 폭격기처럼 날아가던 까마귀가 급식소 하나를 완전히 뒤엎고 있었다. 건사료를 보관하던 통이 열리지 않는다고 얼마나 세게 부리로 쪼아대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건사료통을 꺼내 뒤집어 놓았다. 주변이 엉망이 되어 청소를 해야 했다.

 은토끼님에게 연락을 했다. 여기도 무슨 조치를 해야 해서다. 고양이 사료 두는 곳을 새들이 알게 되면 남아나는 게 없다. 순식간에 털린다.

 은토끼님도 며칠 전에 까마귀 사태를 직접 보신 모양이다. 냥이들 밥그릇이 배수로에서 굴러다녔기 때문이란다. 혹 사람이 건드렸나 조금 긴장하신 모양이었다.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비둘기 까치 까마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시끄럽게 굴었다. 고양이나 새들이나 배고픈 건 마찬가지일 텐데.  아롱이가 먹는 치킨 트릿을 꺼내 뿌려주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난 다음 새들 몰래(?) 가서 건사료와 물을 채우고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

 주변에 있던 다른 급식소까지 폭격 맞은 듯 멀쩡한 곳이 없었다. 급식소 건사료가 털린 건 둘째였다. 물그릇까지 뒤집히고 내팽개쳐지고 쓰러지고. 주변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날짐승들도 먹고사는 문제에 얼마나 여유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까마귀를 위해 그날은 북어 트릿 여분을 들고 갔다. 솔직히 뭘 줘야 할지 알 수 없어서다.

 고양이들 밥을 다 먹는 걸 끝까지 지켜보다 그릇까지 회수하고 돌아서며 보니 먹이로 다가오는 까치를 위협하는 까마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두 마리 중 하나는 새끼처럼 몸집이 아주 작았다.
까마귀가 너무 짖어대니 귀요미는 밥을 먹다가도 자꾸 주위를 살핀다. 내가 주변에 있다는 걸 봐야 안심하는 모습이다.

 박물관 조각공원 넓은 잔디밭에는 유치원 대여섯 군데서 소풍을 왔는지 제법 북적거린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 건너에는 살아가야 하는 일의 버거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동물들이 있다.


어린 감나무에 달린 감. 키가 1미터도 되지 않는 데 감이 열려 놀랐다.
겨우 한 그루 살아서 꽃을 피우더니 드디어 목화가 열렸다.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동네 화단에 영글어가는 목화와 익어가는 감이 보인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는 식물들이 대견했다.

 가을이 그곳에도 보인다.

 힘겨운 환경에서도 다들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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