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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05. 2024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고양이 합사

"까미야~. 작은 형아가 이사 가야 한대. 나리 이번에 오면 오래 있을 거야. 나리, 까미 동생이잖아. 자꾸 하악질 하지 말고~. 알았지?"

 나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반복해야 했다.

고양이들의 속마음을 알기 힘드니 결국 행동으로 유추해야 하는 데 그게 쉬운 일인가?

 


 작년 10월. 나리는 2주 정도 본가에서 지내다 제 집으로 돌아갔다. 까미가 거의 맞고 지내는 느낌?

 나리님(?)을 이동장에 넣는 게 힘들었는지 작은 아들 손등 여기저기 할퀸 상처가 있었다. 이동장에 넣은 김에 동물병원도 데려갔단다. 작은 아들은 나리에 관한 한 상당히 마음이 여린 편이다.


 "3년이 되어 가는 고양이가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남편의 말이다.

공원 고양이들 밥을 챙기는 데도 쫓아와 나리랑 대치 중인 까미. 이렇게 서로 노려보다  싸운다

 까미는 이동장에 넣는 건 일도 아니다. 아니,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거의 반항이 없다. 물론 안약을 넣으려는 눈치가 보이면 도망을 다니기도 하지만 곧 포기하는 착한 냥이다. 밤이면 내 옆에 꼭 붙어 자 주는 것도 까미의 큰 장점이다.

방 문이 열려 있으면 바람처럼 쫓아와 나리를 이렇게 쳐다본다(?)
까미를 내려다보며 대치 중인 나리


 작은 아들이 사는 화곡동 빌라촌은 지난 2년 동안 뉴스에 수시로 오르내렸다. 집주인들이 이사를 가려는 세입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해서였다. 일 년 연장을 해 3년을 살다 이제 이사를 나오려니 나리가 문제였다. 집을 보러 낯선 사람들이 빈집에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계가 심한데. 작은 아들은 이사 문제만이 아니라 11월에는 영화 촬영으로 바쁜 일정이 잡혀 있다며 나에게 나리를 몇 달간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었다.

 어쨌건 아롱이 딸 나리를 입양시킨 사람으로 나리님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무엇보다 혼자 심심했을 나리가 본가로 오면 덜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문제는 제 오빠 까미다. 

 "까미야. 넌 아롱이 엄마 아들이고 나리는 아롱이 엄마 딸. 네 동생이야. 잘 데리고 놀아줘."

거긴 여자화장실이라고 말해도 까미는 툭하면 나리 화장실에  들어가 뒹군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게 서로 모른 척할까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둘의 사이는 평행선. 서로 보기만 하면 하악질에 서로 발길질이었다. 나리는 암컷이라도 절대 만만한 고양이가 아니다. 작은 아들이 나리님이라며 모시고 산 시간이 말해 주듯이.

 2주간이 지나가는데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기색이 안 보인다. 고양이 합사가 미션이라니•••.


 나리를 본가에 데려다 두고 작은 아들은 그야말로 바쁜 일정을 수행 중이다. 경주로 3박 4일. 연이어 여기저기 잡힌 촬영으로 거의 본가에 들르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을 짜내 나리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모습이 짠할 정도다.

작은 아들이 촬영했다며 시사회에 오라고 한 영화.

 까미와 나리의 끝나지 않는 기싸움(?)에 나는 어땠을까? 잠을 마음대로 자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급기야, 두통과 소화불량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가져온 약을 먹으면 조금 나아지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며칠 전 작은 아들은 이틀 밤을 집에 들러 자고 갔다. 그 두 밤 동안 부엌 식탁에서 새벽까지 누군가와 화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촬영은 현장 로케이션까지 했으니 가서 시나리오대로 찍으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식탁에 펼쳐진 영화 대본에는 메모가 노트북에는 무슨 점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어느 지점에서 찍어야 하는지 장면 분석을 미리 협의해야 했던 것이다.


 늦은 밤을 지나 새벽까지 화상 협의를 하는 작은 아들을 보며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다 생겼다.

갇혀서 짜증 난 까미

  큰아들 말대로

  '까미야. 네가 맞고 지낼 생각을 해야지 때리고 지낼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

  성차별적 발언이라도 이번에는 까미가 쉽게 봐주지 않는다. 둘이 남매라며 유전자 검사를 받아 흔들 수도 없고.


  현관을 나서며 살찌면 안 되니 나리한테 무한 급식은 하지 말라는 작은 아들을 내보내고 결국 동물병원을 갔다. 일을 좀 쉽게 하려고???


 비법을 배워왔다. 깨끗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은 다음 상대방 몸에 비벼주라고. 그나마 두 녀석의 얼굴과 몸을 만질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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