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이례적인 폭설로.
눈의 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눈의 무게가 보통 눈보다 세 배나 무거운 습설이라고 했다. 습설이란 낯선 단어에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공원에 나가자 금방 깨닫게 되었다.
토성 비탈길을 든든히 지키던 장송들이 꺾이고 찢긴 채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을 피해 토성길을 도시던 분들이 "아이고 아까워라~"하신다. 사람 마음은 똑같은 모양이다.
날이 추워지면 공원 고양이들 걱정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런 눈 폭탄에도 냥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이 멈추지 않아 다행이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 아롱이는 어디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을까? 사랑이는? 고등어는? 귀요미는? 겨울이라도 같이 지내면 좋을 텐데. 아롱이는 기를 쓰고 딸들을 독립시킨다. 안전하고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은 자식들에게 늘 비켜주는 모양새다.
폭염으로 더워서 절절매던 날이 얼마 전이었는데. 나무들조차 단풍을 미처 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공원 나무들 피해가 심해진 이유는 아마 눈 때문이라기보다 계절의 급변 때문이 아닐까?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전날만 해도 눈을 즐겁게 하던 단풍나무가 쩍 갈라진 채 쓰러져 있었다. 고운 색 단풍물이 이제야 드는구나 싶었는데.
눈길을 더듬거리며 걸었다. 미끄러져 다치면 나만 손해다. 솔직히 추위보다 눈길이 더 두렵다. 등산화를 신었더니 무게감 때문인지 걷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기다리는 냥이들이 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책임감이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토끼님은 하루 휴가를 내셨다. 눈 내리는 이틀.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셨다며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까미와 같이 태어난 까로를 입양해 까로 아빠가 된 아들이 제대하고 취업했으니 출근 준비를 돕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냥이들 먹일 캔과 사료와 간식들이 든 봉투 무게감이 제법 느껴졌다. 쌓인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졌다. 사랑이와 아롱이를 위해 은토끼님이 마련해 주신 겨울집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은밀하고 안전해 보였는데 눈밭을 질러가야 하니 미끄러질까 살짝 겁이 났다.
간신히 접근. 건사료와 여분 캔을 따 그릇에 담아 겨울집에 넣어 놓고 아롱이와 사랑이를 불러 소수레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날이 추워지면 냥이들 먹성이 아주 좋아진다. 입맛이 까다로워 한 동안 은토끼님과 나를 애먹이던 귀요미조차 주는 대로 다 먹어치운다. 들고 간 캔들을 다 털어주고 돌아서는 데 검은 냥이가 안 보였다는 걸 떠올렸다. 아픈 녀석인데다 최근 꾸준히 밥을 청해 왔던 터라 살짝 걱정이 된다. 귀요미 자리에는 객식구 1번 다롱이만 아니라 서넛은 나와 눈을 맞추고 밥을 청한다. 여유 있게 캔을 챙겨도 늘 부족한 이유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눈이 내린 다음 날.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냥이들 챙기는 사람 들으라는 듯 말하고 싶어도 이런 날은 좀 참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