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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Dec 01. 2024

겨울도 오기 전에 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이례적인 폭설로.

 눈의 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눈의 무게가 보통 눈보다 세 배나 무거운 습설이라고 했다. 습설이란 낯선 단어에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공원에 나가자 금방 깨닫게 되었다.

 토성 비탈길을 든든히 지키던 장송들이 꺾이고 찢긴 채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을 피해 토성길을 도시던 분들이 "아이고 아까워라~"하신다. 사람 마음은 똑같은 모양이다.

 


 날이 추워지면 공원 고양이들 걱정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런 눈 폭탄에도 냥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이 멈추지 않아 다행이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 아롱이는 어디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을까? 사랑이는? 고등어는? 귀요미는? 겨울이라도 같이 지내면 좋을 텐데. 아롱이는 기를 쓰고 딸들을 독립시킨다. 안전하고 좋은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은 자식들에게 늘 비켜주는 모양새다.

아롱이를 부르면 이렇게 뛰어 온다. 아롱이의 야옹~소리가 내게는 천상의 화답처럼 들린다.
눈이 온 다음 날 상자를 하나 들고 갔다. 마침 소수레가 비어 있어 그곳으로 아롱이와 사랑이를 데리고 갔다.
사랑이는 이 구조물 구멍에서 나온다. 튼튼한 겨울 집을 마련해 줘도 안전하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나리는 사랑이와 동복으로 태어났다. 집에서도 춥다며 이불속을 파고 들어간다.

  폭염으로 더워서 절절매던 날이 얼마 전이었는데. 나무들조차 단풍을 미처 들이지 못한 상태였다. 공원 나무들 피해가 심해진 이유는 아마 눈 때문이라기보다 계절의 급변 때문이 아닐까?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전날만 해도 눈을 즐겁게 하던 단풍나무가 쩍 갈라진 채 쓰러져 있었다. 고운 색 단풍물이 이제야 드는구나 싶었는데.


 눈길을 더듬거리며 걸었다. 미끄러져 다치면 나만 손해다. 솔직히 추위보다 눈길이 더 두렵다. 등산화를 신었더니 무게감 때문인지 걷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기다리는 냥이들이 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책임감이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토끼님은 하루 휴가를 내셨다. 눈 내리는 이틀.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셨다며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까미와 같이 태어난 까로를 입양해 까로 아빠가 된 아들이 제대하고 취업했으니 출근 준비를 돕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냥이들 먹일 캔과 사료와 간식들이 든 봉투 무게감이 제법 느껴졌다. 쌓인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졌다. 사랑이와 아롱이를 위해 은토끼님이 마련해 주신 겨울집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은밀하고 안전해 보였는데 눈밭을 질러가야 하니 미끄러질까 살짝 겁이 났다.

 간신히 접근. 건사료와 여분 캔을 따 그릇에 담아 겨울집에 넣어 놓고 아롱이와 사랑이를 불러 소수레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억새숲에 가려져 있던 귀요미 급식소가 눈 폭탄에 드러났다.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건사료를 거덜낸다.

 날이 추워지면 냥이들 먹성이 아주 좋아진다. 입맛이 까다로워 한 동안 은토끼님과 나를 애먹이던 귀요미조차 주는 대로 다 먹어치운다. 들고 간 캔들을 다 털어주고 돌아서는 데 검은 냥이가 안 보였다는 걸 떠올렸다. 아픈 녀석인데다 최근 꾸준히 밥을 청해 왔던 터라 살짝 걱정이 된다. 귀요미 자리에는 객식구 1번 다롱이만 아니라 서넛은 나와 눈을 맞추고 밥을 청한다. 여유 있게 캔을 챙겨도 늘 부족한 이유다.


산수유. 붉은 열매가 눈 속에서도 빛이 나는 느낌이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눈이 내린 다음 날.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냥이들 챙기는 사람 들으라는 듯 말하고 싶어도 이런 날은 좀 참아주시기를!

토성길에 만들어 둔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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