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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꾸는 나 Nov 27. 2021

퇴사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엄마라도 사랑해줘서 고마워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육아휴직을 했다. 둘째를 낳고 4년을 휴직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육아휴직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아이들은 많이 자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엄마의 손길도 이전만큼은 필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러나 그 기대는 둘째의 ADHD를 알게 된 순간 사라졌다. 둘째는 불안함이 굉장히 컸고, 그로 인해 감정조절이 어려웠다. 아이는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특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등교할 때 이야기한 것은 잊지 않고 하교 때 지키려고 노력했다. 졸리거나 피곤할 땐 괜한 짜증을 부리 아이에게 좋아하는 놀이나, 맛있는 간식을 주어 감정을 전환할 수 있게 도왔다. 엄마라면 당연한 것들이지만, 불안이 큰 둘째에게 ‘엄마는 네가 1번이야’,‘엄마는 네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 순간 내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너네 엄마 이렇게 힘들게 하면 엄마도 엄마한테 간다” 

라며 아이를 협박했다. 아이가 내 말에 반응하지 않으면 나도 8살 아이가 되어 반응했다. 

“네가 말 안 하면, 엄마도 너랑 말 안 할래”  

제시간에 준비하지 않는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며 재촉했다. 비교가 제일 싫었음에도 첫째와 둘째를 비교했다. 의욕과 마음은 앞서나, 말과 행동은 형편없는 엄마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ADHD 진단을 받은 둘째는, 6개월 만에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찾았다. 처음과 달리 의사는 둘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나와의 면담을 위해 둘째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가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둘째는 “네”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예상과는 다른 둘째의 적절한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의사에게 고해성사하듯, 아이의 요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전 날 학교 담임과 통화도 했고, 학습지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눈 상태였다. 덧붙여 내 생각까지 의사에게 전했다. 


“아이가 짧은 기간에 전반적으로 많이 좋아졌네요. 이번에 약 복용에 대해 의논하려고 했는데 내년 봄까지 지켜보고, 검사해보도록 하죠”


둘째의 불안이 너무 높아서 검사 결과의 편차가 생겼을 수 있다며 추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불안이 다뤄져 안정적인 심리상태가 되면 검사 결과 또한 ADHD가 아닌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지, ADHD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기뻤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 기쁨이 밖으로 새어 나와 가려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벅찬 가슴을 안고 아이와 버스를 탔다. 아이는 피곤한지 내 어깨에 기대어 잠시 잠이 들었다. 그저 둘째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잠든 둘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 같은 엄마의 미안함이었다.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이가 나에게 쉼을 준 시간이었다. 철없는 엄마의 마음을, 형편없는 엄마의 모습을 이해해준 것 같았다.


창 밖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화내고, 소리 지르고, 재촉하고, 울게 만드는 그런 엄마지만. 그런 엄마와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불안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 마음을 느끼기라도 한 듯 둘째는 잠이 깼다. 그리곤 내 얼굴을 빤히 봤다. 3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 우리 어디 가?”

“집에 가고 있지”

“엄마 회사 안 가?” 

“응, 안가”

“나 2학년 되면 간다고 했잖아”

“응, 2학년 돼도 안 갈 거야”

“엄마가 회사 가면 좋겠어?”

“아니”

“그래서 안 가려고”


아이는 웃었다. 엄마이기에 아이가 전부라고 겉으로는 이야기하면서, 마음속에는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내 커리어도 중요했다. 둘째에게 엄마인 나는 전부였는데, 나는 내 삶과 아이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아이의 불안함이 호전되었다니. 나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가능하다니. 저울질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명확해지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이의 인생과 얼마의 돈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가 더욱 좋아지도록 내가 옆에 있어주리라 생각하니 아이와 나 사이에서 저울질했던 마음도 단순해졌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엇인가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하게 아이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엄마로서의 책임감,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려 한다. 그저 아이 곁에 있어주기만 할 생각이다. 앞으로 허락된 시간 동안 아이와 못다 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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