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초등학교 개교기념일이다.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이 키즈카페에 가자고 한다.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부스터 샷 접종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구내염이 생겨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소극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게 아이 친구 엄마들의 모임은 불편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하는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웠다.
“보물아, 엄마가 주사를 맞아서 몸이 좀 안 좋은데..”
“엄마, 엄마가 아파서 못 가는 거야?”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설레며 집으로 온 아이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 눈빛을 보고는 못 가겠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니야, 엄마가 약 먹을게. 그럼 괜찮을 거야”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키즈카페에 도착하기까지 두 녀석들은 쫑알쫑알, 까르르 신이 났다. 도착하자마자 아이 넷은 어떤 놀이시설들이 있는지 탐색했다. 엄마 넷은 음료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둘째가 나를 찾아왔다.
“엄마 친구들을 계속 계속 기다려도 계속 계속 안 내려와”
아이의 친구들은 그냥 놀고 있었을 뿐인데, 내 마음은 순간 ‘그럼 지금까지 놀지도 못하고, 친구들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둘째의 손을 잡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처음에 친구들이 놀고 있었던 그네가 타고 싶다고 했다. 천장에 길게 설치된 그물들을 건너야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데, 바닥이 다 보이는 그물을 무서워 건널 수 없으니 미끄럼틀을 탈 수 없었던 것이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엄마에게 sos를 요청한 듯했다.
“한 번만 거꾸로 올라가서 타보고, 다음에는 그물 건너서 그네 타보자”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야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 타고 내려왔다.
“엄마, 엄청 재미있다”
키즈카페에서 트램펄린을 타다가도 누군가 오면 함께 뛰는 진동이 무서워 타지 않았던 아이였다.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그 보다 불안과 공포가 더 크기에 욕구도 누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런데 그물 건너기, 스케이트 타기, 집라인, 암벽등반 등 친구들은 신나게 놀이하는데, 자신은 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을까. 엄마인 내 마음은 그랬다.
함께 간 네 명의 친구들 중 내 아이만 놀지를 못하니 왠지 소외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어 하염없이 기다리다 엄마에게 온 아이가 안쓰러웠고, 내 마음은 속상했다. 그 깟 친구들이 뭐라고. ‘오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보물아, 수진이랑 앉으려고 너랑, 현서랑 가위바위보 했잖아. 그렇게 앉고 싶었어?”
“응”
“엄마는 친구들이 보물이 얘기도 잘 안 들어주고, 같이 놀지도 앉은 것 같고 그래서 좀 서운했는데 보물이는 괜찮았어?”
“응, 괜찮았어. 재밌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우리 다음에 또 같이 놀러 가자”
“응, 엄마. 아까 나도 용기 내서 그물 건너볼걸. 다음에 언니랑 가서 한번 더 해보자”
“그래, 언니랑 한번 더 가면 용기 내서 잘할 수 있을 거야. 그지?”
아이는 행복해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었다면, 친구들과 더 재밌게 놀 수 있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른인 내 마음은 안쓰럽고, 속상하고, 못마땅함이 가득했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봐주고,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아이에게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면서 내 마음은 왜 그랬을까.
아이는 여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구경하는 것만도 즐거웠는데, 엄마인 나는 내 아이 혼자 못 끼는 것 같았다. 인기 있는 친구 한 명 말고, 다른 친구와 앉겠다고 쿨하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굳이 가위바위보까지 하는 아이의 모습이 싫었다. 아이는 가위바위보에 지고도 마주 보고 앉아서 밥 먹을 수 있다며 좋아하는데, 나는 왜 그 모습이 안쓰러운지. 그것은 모두 엄마의 '자격지심'이었다.
오늘 아이의 엄마 역할은 나도 처음이기에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모두 서툴렀다. 앞으로도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닐 텐데 막상 그 상황에선 나는 또 격하게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오늘처럼 아이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어렵고, 힘들 때에 엄마에게 손 내밀어주길.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아이 편에서 아이 손을 잡아주는 엄마가 되길 말이다.
‘보물아 언제나 함께해 줄 수는 없지만, 힘들 땐 와서 쉴 수 있도록 늘 같은 자리에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