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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꾸는 나 Oct 13. 2021

잠자리를 둘러싼 두 자매의 복잡한 속사정

너만 좋다면, 엄마는 뭐든 좋아

첫째가 9살, 둘째가 6살 되던 해.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친구 집에 다녀온 뒤, 첫째는 선언했다. “엄마, 나도 앞으로 혼자 잘래”. 친구가 혼자 자는 모습이 부럽고, 자신은 혼자 자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대신 의욕은 앞서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첫째는 조건을 걸었다. 동생과 함께 자겠다는 것.


둘째의 의견도 중요했다. 엄마와 떨어져 언니랑 둘이만 잘 수 있는지 물으니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 둘째는 언니의 뇌물에 벌써 넘어간 상태였다. 엄마인 나는 모르지만 두 자매간 이런 모종의 거래는 늘 있었다. 둘째는 불안함을 숨기고 언니에게 받은 뇌물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결전의 날. 원하는 이불, 베개, 인형들로 방안을 세팅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뽀뽀 세례를 하고, 포옹을 했다. “엄마, 우리 없어도 무서워하지 말고 잘 자야 해” 첫째가 말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지 웃음이 나왔지만 “엄마도 혼자 잘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볼게~내일 아침에 만나”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과 일주일의 시도였지만, 후유증은 컸다. 아이들은 하루 밤 사이에 서너 번을 깨어 자고 있는 나에게 “엄마~” 하며 왔다. 한 명이 깨면 다른 한 명이 깼다. 모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실패감과 죄책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엄마는 너희랑 같이 자고 싶은데, 너희는 안 그래? 다시 같이 잘까?” 둘째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좋다고 했다. 그러나 첫째는 “엄마 내가 괜히 혼자 잔다고 해서...” 미안해했다. “아니야, 엄마도 너희가 없으니까 잠을 잘 못 자겠더라고. 엄마가 아직은 준비가 안돼서 그래. 혼자 자보려고 노력한 게 얼마나 멋진 건데!” 그렇게 다시 한 방에 자게 됐다.


하지만 첫째도 무섭고 힘들었는지 함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는 “혼자 잘 수 있어.. 혼자 잘 수 있어..”라며 방안을 돌아다녔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첫째는 한참을 안고 토닥거린 후에야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 원래의 일상을 되찾았다. 그러나 둘째는 눈을 깜박이는 틱이 생겼다. 그동안 가려졌던 불안이 엄마와 분리로 인해 표출됐다. 그리고 그 뒤로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불안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두 딸이 태어난 이후 늘 독수공방 하던 남편은 “환갑 때나 다시 만나자”며 웃으며 말했지만 아이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첫째가 11살 되던 여름, 자기 방을 원했다. 함께 자는 방에는 침대와 동시에 첫째의 책상이 있었다. 각각 분리하면 좋을 텐데 첫째는 한 방에 침대와 책상이 모두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침대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이 언니 방에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낮 시간에 자기만의 공간에 둘째가 침입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두 자매는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첫째가 선물공세를 하며 달래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만 언니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 규칙도 정했다. 그러나 그때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둘째 때문에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첫째는 침대를 분리해 방을 나누어 주길 요구했다. 둘째는 적극 반박했다. 그러나 첫째의 완강한 태도에 나는 둘째를 회유했고, 둘째가 원하는 인형을 사주고서야 따로 자는 것에 대해 타협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성공할지 걱정했지만 첫째는 하루를 자고 나더니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혼자 자니 편하고, 동생의 숨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원하는 것을 얻기 전에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나니 마음이 달라진 듯했다.


“엄마 왜 세아도 엄마랑 자고, 지혁이도 엄마랑 잔다는 데 나는 왜 혼자 자야 해?


둘째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약속을 하고 인형도 샀기에 혼자 자야 한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첫째가 끼어들었다.


 “세아 집에는 방이 몇 개야?”


언니의 질문에 둘째는 “두 개”라고 했다. 첫째는 동생을 설득시킬 묘수가 생각났는지 번뜩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이 2개니까 그렇지~하나는 아빠가 쓰고, 방이 하나 남으니까 같이 자는 거지”


둘째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아빠가 거실에서 자면 방이 2개니까 방이 한 개 남아도 따로 안 자고 엄마랑 같이 자는데 무슨 소리야~”


듣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대화 내용은 또렷이 들렸다. 나와 아이들은 빛과 소리가 완벽히 차단되어야 잠이 든다. 남편은 티브이를 보며 자길 원했고, 서로 맞지 않는 수면 패턴으로 줄곧 거실에서 잠을 자왔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다른 집에도 투영되는 것 같아 우스웠다. 첫째는 어떻게든 둘째의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하려고 했다. 절실함이 느껴졌다. 첫 째의 요구로 엉겁결에 혼자 자야 하는 둘째의 상황도 이해됐다.


2년 전에는 언니에게 받은 뇌물 때문에 자신의 좋고 싫음도 표현하지 못했던 둘째였다. 그런데 이제는 언니에게 반박하기도 하다니. 그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습고, 안쓰럽고, 이해되고, 대견스러운 감정을 느끼기에는 당장의 문제 해결이 급했다. 혼자 자고 싶은 첫째에게 동생의 돌봄을 강요할 수 없었다. 언니의 요구만 들어주는 것에 대한 서운한 둘째의 마음도 달래야 했다.


첫째도 불안도가 높고, 예민했다. 4살까지는 내 배꼽을 만지고 잤다. 혹여 등이라도 돌리면 잠을 깨어 늘 옆으로 누워 잠을 자야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누구 하나를 보고 잘 수 없어 천장을 보고 바른 자세로 잠을 잤다. 양 쪽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자는 동안에도 첫째와 나의 살은 늘 맞대어 있어야 했다. 그랬던 첫째도 자신이 준비되니 스스로 잠자리 독립을 했다. 우리 부부는 둘째도 그러할 것이라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첫째보다 더 빠를 수도, 좀 더 느릴 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기로 했다.


둘째에게 엄마와 같이 자자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내 좁은 침대가 걱정되었는지 “엄마 1인용 침대에서 엄마랑 나랑 둘이 잘 수 있을까?”물었다. “엄마랑 보물이는 날씬하니까 충분해~잘 수 있어”대답했다. 그제야 둘째는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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