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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꾸는 나 Oct 27. 2021

괜찮아요, 엄마인 내가 90점을 채워주면 되니까요

나에게 와준 너, 고마워

신촌 세브란스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의 ‘세바시’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됐다. 아이들은 기질에 따라 순한 기질, 느린 기질, 까다로운 기질의 3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천근아 교수는 부모+아이 점수의 합을 100점이라고 가정했을 때, 아이의 기질마다 타고난 점수가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순한 기질의 아이는 90점. 느린 기질의 아이는 50점.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는 10점을 타고난다고 하자. 그럼 백점을 채우기 위해서 순한 기질 아이의 부모는 10점. 느린 기질 아이의 부모는 50점. 까다로운 기질 아이의 부모는 90점을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30개월까지 말이 트이지 않았다. 두 돌 정도 되면 최소 두 세 단어 문장으로 표현하는데, 첫째는 고작 10 단어 정도를 표현했다. 돌이 되었을 때 나는 복직을 했고, 아이는 시부모님이 키워주셨다. 그런데 퇴근 후, 아이는 엄마인 나를 만나도 대부분 무표정이었고, 나와 눈 맞춤도 되지 않았다. 언어뿐만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언어치료센터와 심리센터를 방문했다. 아이는 느리지만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를 출산하고 시댁 옆으로 이사를 갔다. 어머니는 모유 수유하는 며느리가 낮에 잠시라도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잠깐씩 아이를 데려갔다. 그런데 며느리를 위한 배려가 문제가 될지는 어머니도, 나도 몰랐다. 아이는 기질상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 불안했고, 그로 인해 불안정 애착이 생겼다.


둘째를 낳고, 4년을 휴직했다. 부족하지만 첫째와 애착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부모께 맡길 수 있었지만 어딜 가든 늘 아이를 데리고 갔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를 했고, 하루 일과를 일정한 루틴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방의 구조, 이불 등 잠자리에 관련된 것들을 바꿔야 할 땐 시간을 두고 아이에게 여러 번 설명해 주었다.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소리와 빛은 차단시켰다. 옷은 잠자기 전 아이와 같이 고르거나, 미리 보여주어 예상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식재료를 먹이기 위해 재료의 양도 조금씩 조절하고, 아이가 재밌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모양도 시도했다. 


사회적 민감성이 100명 중 99등인 아이인데 그것에 비하면 다른 부분들이 균형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네요. 잘 키우셨어요, 어머니


4년 뒤, 다시 찾는 심리센터에서 잘 키웠다는 말은 그동안 내 노력에 대한 위로였다. 내 생활이 없었던 4년의 휴직기간이었지만 아이와 안정적 애착 형성의 결과물은 최고의 보상이었다.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의 힘듦을 알지 못한 지난날 아렸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았다.


배밀이도 하지 않았던 아이. 무릎 기기도 하지 않고 어느 날 서서 걸음을 걸었던 아이. 자고 나니 말문이 틔여 술술 말하던 아이. 어느 날 갑자기 책 한 권을 줄줄 읽었던 아이. 첫째는 그런 아이였다.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렸고, 안정감이 들어야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아이였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니, 아이의 행동도 이해됐다. 


11살인 첫째는 아직도 받아들이는 것이 느리다. 철이 바뀔 때마다 외출복, 내복, 양말, 신발 등의 일상적인 변화도 힘들어한다. 오죽하면 똑같은 브랜드에서 색깔만 다른 바지를 사는데도 옷마다 허리 밴드의 텐션이나, 바지의 통, 옆선의 느낌이 다른지 다시 한번 같은 종류의 옷인지 확인을 한다. 


엄마 이바지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거야?”


응, 모양은 똑같고 색만 다른 건데 왜?”


이 바지 허리가 좀 불편해, 허리에 딱 붙어


그래? 네가 처음 입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이 바지가 더 작다고!”


나는 두 개의 옷을 맞대어 보았다. 아주 미세하게 바지의 허리길이가 달랐다. 아이는 허리의 미세한 텐션도 느낄 만큼 감각이 발달되어 있었다.


나의 첫째는 느리고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이다. 어떤 땐,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것이나 잘 먹는 아이들의 엄마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예민하기에 아이의 마음을 잘 안다. 엄마인 내가 예민하기에 아이의 불편함도 아주 빨리 알아챈다. 그리고 그 예민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출하는 아이의 행동도 기다려 줄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이런 엄마이기에 나에게 와 준 것이 아닐까. 그것이 한편으론 고맙다.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기에.


100점 중, 10점만큼만 가지고 나에게 와 준 아이. 엄마인 내가 90점만큼 채워주면 아이도 100점이다. 아이가 얼마만큼 가지고 태어났는지 중요하지 않다. 부족한 부분은 엄마인 내가 채워주면 되니까. 내가 지치고 힘들다고 아이에게 10점만큼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20점 밖에 안 되는 아이의 인생은 얼마나 애처로운가.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본다. 아이의 능력을 믿고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년과 똑같은 브랜드의 한 치수 큰 겨울 바지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고 있다. 아이가 그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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