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비밀이 옅어지는 계절
5월 말, 일주일간의 짜이츠 미술 여행은 특별하고 소중했다. 독일인 교수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낸 시간. 그것을 또 한 번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떠나겠지만, 외롭고 어색하게 앉아 웃기보다는 웃는 척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함께 있던 은주도, 독일 친구들도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고, 편안한 나로 존재하는 곳은 오직 일기장과 스케치북 위에서였다. 학교에 다닌 지 고작 두 달쯤 되었을 뿐이니.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미술 학부 인스타그램에 학생회가 주최하는 엠티 소식이 올라왔다. 오두막에서 두 밤을 보낸다는 것 외에는 마땅한 정보가 없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학기초와 달리 어색함과 불편함을 견디는 상황이 귀찮았던 나는 그것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엠티에 가게 된 건 같이 가자고 조른 은주와 신청 기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단톡방에 초대해준 학생회 친구들 덕분이었다. 내가 아니라 그 여행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그들 사이에 내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듯.
떠나는 날 아침이다. 방에서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창밖에 흰 눈이 소리 없이 휘날리고 있다. 거인이 커다란 숨으로 후, 바람을 불어 떠오른 먼지들처럼 가볍게. 당장 책상 위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고 팔과 얼굴을 밖으로 내민다. 불어오는 찬기가 제법 겨울 같다. 단 오분의 첫눈이 지나자, 풍경은 여전히 초록색과 갈색이 애매하게 섞인 가을이다. 어느 날은 황금빛처럼 아름답다가, 또 어느 날은 삭막하기만 한. 우연히 첫눈을 보았으니 왠지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방을 나선다. 손에는 커다란 이불 가방을 들고 있다. 그곳에 이불과 베개, 담요와 패딩, 목도리와 장갑, 모자와 커다란 스케치북이 모두 담겨있다. 오두막은 추울지도 모르니까 넉넉히. 친구의 차를 타고 가는 자의 특권이며, 내 짐의 크기에 남의 눈치 보기를 졸업한 자의 여유다. 은주와 내가 탈 비올라의 차가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비올라와 모나는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새미와 은주의 사이에서 습관 같은 긴장도 잠잠하다. 우리가 가는 곳은 한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는 어떤 높은 마을이다. 차가 조금씩 비스듬히 기울어질수록 창밖의 풍경은 거대한 눈밭으로 변한다. 눈부신 흰색이 사방으로 질주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달리는 차 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식당도 가게도 없는 작은 마을. 사람 소리나 교회의 종소리 대신 간간이 소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밤이 온 것도 아닌데 세상이 오직 검은색과 흰색이다.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어떤 화려한 색채도 그립지 않다.
오두막은 군데군데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3층짜리 흰색 주택이다. 큐의 가족들이 지인들과 함께 쓰는 별장이라고 한다. 신난 표정으로 테라스의 눈을 쓸고 있는 아나벨에게 인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문 옆 나무 신발장에는 독일 애들이 즐겨 신는 검은 닥터마틴 워커가 줄지어 놓여있다. 1층에는 (독일식으로는 0층) 화장실 하나와 주방, 주방과 이어지는 식당이 있다. 한쪽 벽면을 따라 이어진 의자에 옛 독일식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볼만한 두툼한 나무 테이블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유리 벽장 안에는 맥주잔과 와인잔이 종류별로 들어차 있다. 아이들은 이미 테이블 이곳저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카드 게임을 한다. 오븐과 냉장고, 모든 크기의 냄비와 모든 크기의 접시가 있는 주방에는 아이들이 이미 옮겨놓은 식재료가 가득하다. 바나나와 사과, 와인, 각종 티백, 많은 양의 파스타 면. 슬쩍 귤을 하나 까먹고 주방 구경을 마친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또 3층으로 올랐다. 차가운 철제의 감각이 발바닥을 밀어낸다.
각 층에는 화장실 하나와 여러 개의 방이 있다. 이 층 침대가 있는 사 인실과 십 인실, 침대 두 개가 있는 이인실 등 여러 개의 방과 창문의 풍경 등을 훑어보며 신중히 방을 고른다. 그런데 어디든, 각 방에 침대라니. 이 오두막은 나의 상상 밖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학교나 엠티에서 가본 숙소 중 어떤 곳도 각자 쓸 만큼의 침대가 있었던 곳은 없다. 대게 아무런 가구도 없는 널따란 거실 하나와 운이 좋은 사람이 차지하는 침대가 하나쯤 있을 뿐이다.
은주와 나는 3층 맨 끝 방을 차지했다. 방 안에 세면대와 거울이 있고,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인 아늑한 다락방이다. 라디에이터 위로 난 네모난 창문에 훌륭한 겨울 풍경이 걸렸다. 늘 엠티를 싫어해 아무 기대 없던 내게 오두막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방과 침대, 그리고 언제든 떠나볼 흰 눈밭을 내어주었다.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운 채 은주에게 말한다. “짜이츠 때는 내가 우리 둘이 방 쓰는 걸 엄청 끔찍하게 여겼잖아. 그래서 방을 바꿨는데, 지금은 언니랑 둘이 쓸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 신기해” “편하고 좋지~” 은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웃는다.
북적이는 식당. 한 무리의 아이들이 주방에 모여 수를 끓이고 있다. 그 속에서 양파를 까며 눈물을 흘리는 새미의 모습에 모두가 웃는다. 여느 때처럼 큐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힙한 음악을 틀어둔다. 가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나벨의 옛날 독일 어쿠스틱 음악은 아이들의 야유를 받지만 김광석과 김창완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는 제격이다. 두 학기째 미술 수업과 행사에 성실히 드나든 탓에 우리의 존재가 낯선 사람은 없는 듯하다. 학기 초에는 발음이 쉬운 ‘썸머’로 불리던 은주도 이제는 자신을 ‘은주’로 소개한다. 사려 깊은 성격의 샤루는 내 이름의 한국식 발음을 묻는다. 첫인상을 만드는 시기는 지났다. 친구들은 이미 우리가 잘 웃는 걸 알고 있으니, 입꼬리에 억지로 웃음을 걸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근처의 편의점도 차를 탄 외출도 없이 고요한 풍경 속 외딴 오두막에서 눈 위와 오두막, 아침과 밤을 배회하며 이박 삼일이 지났다. 시간을 잊고, 다른 누구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곳에서 잠이 쏟아질 만큼 지루한 여행기를 써본다. 오직 계피 향이 나는 달콤한 크리스마스 쿠키와 불어 터진 스파게티와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눈이 전부인 평화로운 이야기를. 이곳에서는 시원한 맥주보다 따뜻한 차가 유행이다. 족히 열 종류는 넘는 듯한 티백 박스가 열려 있고, 빈 소주병 대신 푹 적셔진 티백이 둥근 접시 안에 겹겹이 쌓였다. 부엌에서는 아주 커다란 냄비에 귀리 우유와 초콜릿 가루를 저으며 핫초코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테이블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데, 수채화부터 파스텔과 잉크까지 다양한 그림 재료와 지우개 가루가 식탁 위에 널브러진다. 100가지 색이 있는 카트린의 크레용과 마카 세트를 보고 레오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 이건 천국이야.” 카트린은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며 누구든 마음껏 쓰라고 전한다. 우아한 종이로 싸여진 그것을 하나 뽑아 흰 눈의 풍경을 그렸다. 오직 파란색으로, 또 한 번 오직 마젠타 색으로 같은 풍경을 그려보았다. 그 옆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분홍색 칠이 된 젠가를 하고, 그 옆에서는 또 다른 보드게임을 하고, 그 옆에서 또 그림을 그리는 풍경이다. 무료하기보다는 여유롭고 생산적이기보다는 편안하고 정신없기보다는 느릿한 시간을 보낸다.
하루에 한 번은 혼자, 또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죄책감 없이 눈 위에 알록달록한 그라피티 스프레이를 뿌리고 놀았고 검은 잉크로 동네의 소를 그린 뒤 펜에 묻은 잉크를 흰 눈에 비벼 씻었다. 스프레이나 물감이 뭍을까 봐 옷을 뒤집어 입고 신발에는 비닐봉지를 묶어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눈싸움하는, 검은 잉크가 묻은 본인의 손을 보고 푸하하 웃어버리는 이 애들의 털털함이 좋았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눈 쌓인 산을 걸었다. 특유의 무뚝뚝함과 내향적인 성격으로 거리감을 느꼈던 아이들은 눈 속에서 모두 아이처럼 신나 했다. 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사랑할 구석을 너무 많았다. 매주 수업 시간에 조용히 그림을 그리던 아나벨, 율리아, 베라는 마치 눈이 차갑지도 않고 녹지도 않는 부드러운 솜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을 눈 속에 던지고 있다. 눈싸움을 하고 달리고 구르고. 심지어 얼굴도장을 찍는다며 맨얼굴을 스스로 눈덩이에 파묻는다. 지루할 틈 없는 그들의 대범함에 나는 깜짝 깜짝 놀란다. 눈을 바라보는 내게 아이들이 자꾸만 묻는다. “너 눈 천사 만들었어?” 모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뽀얀 눈에 대자로 풀썩 누워서 팔다리를 위아래, 양옆으로 흔드는 친구 옆에서 나도 몇 년 만에 눈 위에 털썩 눕는다. 내 몸의 반쯤이 차가운 눈 속으로 들어가자, 땅에 폭 안긴 기분이다. 얼굴은 얼고 볼이 발그레해진다. 아름다운 눈을 그저 바라 보고 사진 찍는 것으로 족했던 나를 반성한다.
아무도 걷기 싫다고, 무섭다고, 귀찮다고, 춥다고, 축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플래쉬를 켜지도, 미끄러운 길에 표정을 구기지도 않는다. 일부러 얼음 위로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지고 슝슝 소리를 낸다. 이미 여러 번의 겨울을 이런 식으로 보냈다는 것을 티 내듯 그들의 몸짓은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그 속에서 살며시 카메라를 꺼내 들며, 앞으로의 겨울에는 눈을 구경하기보다 눈에 뛰어들기를 기대한다. 친애하는 친구들과, 짙은 어둠 속 미끄러지듯 자유로운 이 아이들처럼.
마지막 날 아침, 흐린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햇살이 네모난 창으로 들어온다. 아침 산책을 꼭 해야지, 다짐했던 은주와 나는 옷을 둘둘 말아 입고 잠든 아이들의 방을 소리 없이 지난다. 눈은 어제보다 확연히 녹아 있다. 검고 희던 풍경에 갈색과 초록색이 섞여 들었고 폭신한 눈은 질퍽한 흙이 되었다. 우리는 지난 저녁 아이들이 구르던 눈밭에 가본다. 눈이 녹은 그 자리는 어제보다 낮고 좁아진 듯하다. 옅게 남은 눈 위에는 간밤에 뛰놀던 동물들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 겨울은 비밀이 옅어지는 계절. 나뭇잎이 있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우리의 오두막이, 앙상한 나뭇가지 너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동안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녹아버린 눈처럼, 녹아버릴 꿈이 되어 그 안에 북적일 아이들도 곧 사라지겠구나, 예감한다.
우리가 오두막을 떠날 때 한겨울같던 풍경은 벌써 겨울이 지나 봄이 온듯 보인다. 그 자리에 있던 눈보라치던 밤, 오렌지 빛 오두막은 오직 내 기억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