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가 인생의 끝은 아니기에
우리 집은 부도가 난 적이 있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충격이 커 그때 당시의 상황들을 무의식으로 밀어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 시기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동의 2평 남짓한 골방에 지냈던 기억, 온 가족이 스쿠터에 얹혀 하동 도로를 달리던 기억, 피자가 먹고 싶다던 날 위해 눈을 뚫고 시내에서 아빠가 피자를 구해온 기억, 이별 전 나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 등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들은 여전히 내 기억에 잔류하고 있다.
친구들은 부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나를 신기해했다. 난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부도만이 살길"이라는 가훈을 삼자고 할 정도로 부도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시선은 굉장히 낙천적이다.
부도가 나기 전 아빠는 굉장히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아빠의 말은 곧 법이었고, 그에 반항한다면 골프채를 꺼내 항상 엉덩이를 찜질해 주셨다.
기분이 좋으면 한 없이 사랑을 표현해 주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였다.
냉탕과 온탕을 몇 시간 단위로 오가는 아빠의 변덕스러운 성격 탓에 우리 가족은 늘 긴장 상태였고 눈치보기 바빴다. 이 시기의 아빠를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전의 일화들을 이야기해주면 깜짝 놀라곤 했다.
내가 봐도 지금의 아빠는 이전과 딴 사람이다. 엄마는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자기를 챙겨주는 아빠를 사랑했고, 나와 형은 실수를 하면 너그럽게 포용해 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항상 귀를 열어주고 자신의 가치관을 공유해준 아빠를 존경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나는 누구보다 믿는다. 내가 직접 경험했으니깐. 대학교를 중퇴하고 23살의 나이에 첫 창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의 교훈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삶이 지칠 땐 최악의 순간에서 다시 일어난 아빠를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다.
아빠는 나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걸 두려워해"라고 말씀해 주셨다. 뻔한 말일 순 있지만 아빠의 삶의 궤적을 봐온 나로서는 아빠가 해준 말의 무게가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다만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결정은 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