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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모 Dec 23. 2022

나는 목욕탕에서 철학을 배운다

자존감과 겸손함의 상관관계

나는 평소에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는 편이다. 술을 좋아하지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즐기지도 않는 나는 다른 또래 친구들과 달리 단체로 모여 노는 것보다 아빠와 단둘이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즐거웠었다.


다양한 경험에서 누적된 아빠의 대답은 늘 나에게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주었고 아빠의 가치관을 흡수하면서 나 역시도 정신적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가장 웃긴 사람이기도 했다. 언제든 진지함과 유머를 적절히 섞을 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경청하며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인격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가 재미없을 리가.


이번 휴가 역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지방에 내려갔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돌아다니고 백화점, 카페도 들르며 충분한 충전의 시간을 가졌었다. 어김없이 아빠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시간도 찾아왔고 대화를 나누던 중 최근 자존감에 대해 다룬 영상을 보고 문득 아빠의 생각이 궁금해져 물어보았다.


"아빠, 아빠가 생각하는 자존감은 뭐예요?" 잠시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아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겸손해질 수 있는 조건 아닐까?"였다. 처음에 답을 들었을 때 와닿지가 않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겸손과 자존감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빠 주변에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과시하거나, 과장된 언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남들에게 돋보이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타인의 비난에도 쉽게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여유가 묻어 있겠구나 싶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작은 부분에도 크게 반응한다고 했었다. 본인을 인정하지 않으니 남들에게 굽힐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없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 드는 부분이 들춰진다면 덮어버리기 위해 과장된 모습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결핍된 모습들은 숨기고 싶어 한다. 날이 선 반응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내가 세운 날에 누군가가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드러운 날을 세울 수 있도록 나를 잘 지킬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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