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인 곳에 내가 이만큼 힘들었네 울었네 하는 글을 쓰는 것이 어쩐지 굉장히 부끄러워져서 한동안 글쓰기를 쉬었다. 다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해 체력이 딸린 것도 한몫한 것 같다. 글을 굉장히 천천히 쓰기 때문에, 일기의 시간대와 현재는 약 2주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현재의 근황을 말해보자면, 요즘은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어지럼증 약을 매일 먹기 시작한 뒤로는 더 이상 어지럽지 않아 곧잘 걸어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 사실 어제도 국대 축구 중계가 잘 안 보이는 바람에 유니폼을 입은 채로 TV 앞에서 엉엉 울었지만...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풀샷으로 보이는 축구공과 선수들은 왜 이렇게 작으며 공은 왜 이리 빠른 것인가..! 경기장 코앞에 살면서 직관을 못 가는 게 너무 슬펐는데, 만일 갔으면 그냥 네모나고 큰 잔디만 2시간 동안 보다 왔을 것 같다.)
아무리 투병일기라고 해도 매번 너무 힘들었던 이야기만 써 본 것 같아서, 오늘은 최근 가장 기뻤던 날에 대해 쓰려고 한다. 바로 발병 후 첫 출근날이다.
첫 출근한 스펀지밥
뇌경색 발병 후 3주간 출근을 못하다가, 드디어 회사에 복귀했다. 아직 눈 때문에 운전을 하지 못해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갔는데, 마치 이제 막 입사해 첫 출근을 하는 것처럼 얼마나 떨리던지...멀미가 다 날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잘 버틸 수 있을지 등 온갖 걱정을 떠안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 이런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이렇게 내 발로 걸어서 다시 출근하게 된 것이 너무 감격스럽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솔직히 넘어지지 않는 것에만 집중해, 입구만 보고 직진하느라 뒤에서 사진을 찍는 줄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멋지게 걸어볼걸.)
친구가 찍은 출근 기념사진 (이라기엔 너무 디스패치에 가까운 파파라치샷...)
엘리베이터 입구로 들어가니, 체온을 재는 기기 위치가 바뀌어 있어 당황했다. '3주나 안 왔으니 바뀔 만도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우연히 같은 부서 선배를 만났다. 이제 몸은 좀 어떤지, 병원밥은 어땠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스몰톡을 나누면서 12층으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체온 기기 위치가 바로 어제 바뀌어서 선배도 아직 어색하다고 했다. 혹시나 어지러워 견디기 어려울까 봐 잔뜩 얼어있던 나는 선배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익숙한 복도를 걸어, 익숙한 공기를 맡고, 익숙한 공간에 들어섰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같은 부서 사람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셨다. 나도 너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왠지 편안한 느낌을 받으며 내 자리로 향했다. 집 외에 다른 공간에 가면 눈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어지러움을 느꼈고, 복귀에 있어 가장 걱정한 부분도 그 부분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미 일 년 이상 지지고 볶고 한 공간이라 그런지 모든 곳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3주간 앉지 못했던 자리에 앉아 잠시 책상 정리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에 확진돼 격리하다가 같은 날 복귀한 동료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동료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대체 코로나가 뭔지...우리가 역사에 쓰일 만한 시국 속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또 다른 동료가 내가 없던 사이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찾아왔다. 코로나에 걸리면 얼마나 아픈지, 이제 피할 방법도 없다는 둥 셋이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점심을 같이 먹자며 손을 흔들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나는 사무실에서 '장민호'라는 이름의 장미허브를 키우고 있었는데, 3주 동안이나 돌보지 못한 게 맘에 걸려 화분을 살펴보니 옆자리 차장님 덕분인지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허브를 보며, 나도 다시 파릇해져 이곳에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TMI : 이름이 장민호인 이유는 장미허브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이라서기도 하지만, 엄마가 가수 장민호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도 장민호 얘길 많이 들어서 장미허브를 보자마자 이름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주입식 교육인가...)
복귀날 찍은 장미허브 '장민호'의 사진
온전하지 못한 몸 상태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 걱정이었는데, 막상 출근하니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아직 몸은 힘들지만,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출근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전국의 직장인들은 이게 무슨 집게리아 출근한 스펀지밥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나에게는 이 복귀가 너무도 기뻤다는 점을 고려해 양해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도 이 날 한정의 생각이었다.)
혹시나 잘 모를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집게리아'에서 일하는 스펀지밥은 출근을 너무 좋아해서 '월요일 좋아'라는 노래를 만들 정도로 직장에 미쳐있는 애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디스플레이 설정을 찾아 화면 배율부터 높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대체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글씨를 보고 살았던 거지? 눈도 좋아 증말 같은 소리를 맘속으로 내뱉으며 배율을 150%까지 올렸다가, 타 부서 사람도 읽을 수 있을 듯한 글씨 크기가 왠지 창피해져서 120%로 줄였다. 대신 잘 안 보이면 그때그때 컨트롤 -,+를 눌러 페이지 크기를 변환했다. (크게 보다가 뒤에 누군가 지나가는 것 같으면 컨트롤 마이너스 연타!!!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괜히 혼자 이러고 있다.)
그렇게 첫 복귀 날의 업무를 시작했다. 흐릿한 눈은 여전했지만,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화면조차 못 보던 내가 이렇게 회사에 출근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뿌듯한 하루였다.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매일 집에서 혼자 '이러다 영영 복귀를 못 하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만 했던 나는, 이 하루의 출근만으로도 재활에 성공한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내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니 이제야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점심에는 차장님이 기력을 회복하라며 우대 갈비를 사주셨다. 말로만 들어보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거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상암 '전설의 우대갈비'
무쌈에 싸서 와사비 살짝 올려 먹으면 GOOD
사실 우대 갈비 식당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 눈에 익지 않았던 데다가,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가 눈앞을 맴돌아 너무 어지러웠지만,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입 먹고 나니 식욕이 어지러움을 이겨버렸다. 셋이서 4인분을 야무지게 싹쓸이하고 식당을 나왔다.
보통 점심을 먹고 나면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지거나 사내 휴게실에서 쉬는데, 이 날은 차장님이 몸에 좋은 것을 마시자며 전통 찻집에 데려가셨다. '십전대보차'가 그렇게 몸에 좋다면서 말이다. 이제 막 코로나에서 벗어난 탓에 기력이 허했던 동료와 나는 이 말에 혹해 나란히 '십전대보차'를 주문했다.
색깔부터 강렬한 십전대보차
차장님은 이게 커피보다 맛있다며 후루룩 맛있게 드셨지만, 나와 동료는 첫 입부터 전해오는 강렬한 쓴 맛에 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몸에 좋다니 계속 마시게 되었고, 마시다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물론 다 마시지 못해 테이크 아웃해왔지만...) 이걸 마시고 아직 남아있는 코로나 증세가 다 떨어지길 바라면서 마셨다.
이후 사무실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시작하고, 컴퓨터를 본지 시간이 꽤 흐르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13층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12층 사무실에 내려가 일했다.
13층 의자에서 보이는 창문 밖 하늘
어지러워서 종종 쉬어야 하면서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 예뻐보였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이 날 진짜 좀 미쳐있었던 것 같다. 광기의 스펀지밥...)
그렇게 일하다 시간은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고, 또다시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동료들을 보내고 사무실에 남아 친구를 기다렸다. 곧 친구와 만난 나는 회사에서 하루를 온전히 버틴 것을 자축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엄마한테서도 연락이 와있었다. 오늘 출근이 어땠는지 궁금했나 보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스펀지밥과 엄마의 카톡
이 날 복귀했다는 것에 너무너무 들떠서, 퇴근 후 솜이 산책까지 감행하고 나니 다음날이 너무 힘들긴 했다... 사무실 구조가 눈에 익어서 돌아다니는 건 괜찮은데,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보고 있는 것이 좀 힘들다.(얼마 전에 호랑이가 5마리 정도 나오는 영상을 봐야 했는데, 색색깔의 줄무늬를 한 호랑이들이 얼마나 깨발랄하게 뛰어다니던지 멀미가 났다.)
지금은 몸상태를 봐가며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그 이후로는 출근을 하더라도 이 날만큼 기쁘진 않았고, 광기의 스펀지밥에서 벗어나 다시 평범한 직장인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좋았다. 나는 이 '평범한'이라는 수식어를 지난 3주간 얼마나 얻고 싶었는지 모른다. 평범하게 걷고, 평범하게 회사에 가고, 평범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평범한 저녁 식사 후 잠에 드는 삶. 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했던 내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 지금도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들이 앞에 있으면 어지럽거나 잘 안 보여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나름 '평범해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아직 눈이 잘 안 보이니 평범한 건 아닌가?)
아무튼, 이 날의 첫 출근(?) 기분만큼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날 하루만큼은 K-직장인이 아니라 출근이 너무나도 기쁜 스펀지밥이었다.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온 것만 같은, 의미 있는 하루였다. 나는 앞으로도 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다. 좀 느리더라도 평범한 삶.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소중한 것, 그게 나의 새로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