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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Mar 24. 2022

"괜찮아"라고 말하는 아들의 진심

인생을 배워가는 14살

14살 아들이 미국으로 간지 한 달하고 6일이 지났다.


처음 일주일은, '여길 빨리 떠나고 싶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다음 일주일은, '나름 좋다, 아이들이랑 재밌게 지낸다'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세번째 일주일은, '여기 너무 재미있어, 진짜 수업 빼고 다 좋아!'라는 극찬을 쏟아부었다.

네번째 일주일이 지날 때, 아들은 갑자기 얼굴 전화를 하기 싫다고 했다.


"엄마가 니 얼굴을 보고 싶은데 ,왜 그러니....응?"

"아니, 싫어~ 나 지금 바쁘다고..."

"왜, 뭐한다고 바빠? 오락해? 으이그...."

"몰라, 몰라, 빨리 얘기해 그냥~"

"학교는 어때?"

"괜 찮 아! 진짜 다 괜 찮 아! 너무 좋아! 됐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서운함도 느껴졌지만, '다 괜찮다'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아들의 자유시간을 허락했다.

"그래...알겠어, 너 자유 시간 즐겨~"

"응 고마워, 내가 수요일에는 20분 통화 꼭 해주께!"

해준다니...

연애시절 남편에게 들었다면 분기탱천할 대사였지만, 해바라기 엄마는 아들의 다음 전화를 기약하며 통화종료를 눌러주었다.




며칠이 지난 수요일 아침, 신나는 벨소리와 함께 아들의 이름이 전화기에 떴다.

인생 최고의 명랑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로 얼굴 통화를 시작했다.



"아들~~일주일만에 얼굴을 보는거네..잘 지냈어?"

"오키오키~난 잘 지내지~~엄마는?"

"엄마도 너무 잘 지내지..별 일은 없었어?"

"응, 괜찮아, 다 괜찮아, 걱정마....그냥 좀 집이 그립기만 해..."


말끝을 흐리며 아들은 얼굴 통화를 중단했다.


"얘, 얼굴이 안보여, 너 카메라 껐니?"

"응....좀만 기다려...."

"뭐해? 너 또 웹툰 봐?"

"아니야...잠시만...."


다시 카메라를 켜고 들어온 아들은 눈시울이 빨갰다.

씩씩하고 말 많고, 장난끼 많은 아들에게선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이었다.


"울었어?"

"아냐~~아니라고....."


다시 카메라를 끈 아들은 목소리만 들리는 채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지난 번에도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눈물나서, 전화 못한거야...요즘 좀 그래...그냥 집이 그립고, 친구들도 그립고...선생님이 무섭기도 하고....좀 눈물이 났어..."

"너 왜 그럼 다 '괜찮다'라고 한거야...엄마한테 이야기를 하지.."

"아니....그냥, 엄마한테 다 얘기하면 엄마 또 이렇게 울거잖아...그러니깐 그랬지...또 봐..지금도 엄마가 우니깐, 내가 얼굴보면서 전화를 못하겠다는거지...."


아들의 담담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고 있던 눈물이 구쳤다.

아들의 '괜찮다'라는 말에,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때문이다.

대체로 불평불만이 많고, 다소 개인적이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인 아들이었기에, 이 '괜찮다'는 말은 아픔을 견뎌내고 있다는 신호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들은 여전히 카메라를 켜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울지마 엄마, 알겠지? 잘 지내니깐 울지마라고..."

"알겠어....엄마는 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러지...혹시 기도제목 있어? 엄마가 같이 기도해줄께.."

아들은 몇 가지 상황을 얘기하며 같이 기도해주길 바랬다.

엄마의 울먹이는 기도를 들은 아들은 '고마워요'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있는 첫째가 안쓰럽기도 하다. 인생이 그 쓴맛의 열매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되어가는 것이라지만, 우리가 너무 가혹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고통과 인내의 시간 없이 맺히는 열매는 없기에 그것을 조금 일찍 겪는다는 마음으로 보려 한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은 따르기 마련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외로이 자신의 마음,새로운 환경들과 싸우고 있을 아들을 위해 기도해본다.

엄마의 기도가 화살이 되어 아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와 소망이 샘솟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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