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명함

by 앞니맘


남편에게 특별한 친구들이 있다. 남편이 특, 대, 중, 소로 나누어서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분류한 것은 내가 세운 기준에 맞는 절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흔한 표현이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마음의 거리를 좁히거나 넓히지 않는 친구.

@의 모든 것을 기다려 주는 친구.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

@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대접하고 싶은 친구.

@마누라한테 당당하게 말하고 만나는 친구?


결혼 전부터 현재까지 우리 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고 나 보다 남편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남편의 중. 고등학교동창이면서 우리 부부의 삶에 중요한 시간마다 함께 했던 친구다.


어떤 유명인 동창 보다 이우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던 친구는 결혼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고 그곳에서 정착했다.


재욱 씨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반도체 설계를 하고 있다. 전공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던 두 사람이 절친이라고 했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름에 한국 방문해요. 07/31~08/11(금)

언제 찾아가면 좋을까요?"

"한국에는 일이 있으신 건가요?"

"특별한 일은 아니고, 겸사겸사 강화도에도 방문할 겸…"

"제가 일정을 보고 연락드릴게요."

"제가 시간 여유가 있으니 편하신 날짜를 알려주세요."


남편의 소식이 가짜 뉴스가 아닌 것을 확인했지만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에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한국문 계획이 잡히자 나와

아이들의 일정에 맞추느라 미리 연락을 한 것이다.


재욱 씨를 만나기 위해 8월 3일에 강화 터미널로 향했다.
"잘 지내셨어요?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아요."

"네, 저는 뭐 잘 지냈죠. 아프기도 했지만 체중관리도 하고 있어요."

몇 년 만에 만난 재욱 씨는 살이 빠졌다는 느낌 외에 변한 것이 없이 꼿꼿했고 반듯했다. 친했던 남편의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들과의 추억이 남편과 함께 묻어와서 인지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하곤 한다. 오늘도 재욱 씨를 보는 순간 스므살의 남편이 소환되면서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눈물을 참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낯설게 인사를 했다.

"네가 막내구나. 너는 나를 모르는데 나는 다 알아. 유튜브로 다 봤거든."


아이들과 함께 앉아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재욱 씨 가족들의 미국생활도 이야기하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우리 둘째가 재욱 씨에게 물었다.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어떤 친구였어요?"

"조용하게 그림 그리는 친구. 약간 괴짜?"

학창 시절 남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이다.

"두 분이 친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우이는 내가 필요했어. 중학교 때는 공부하다가 모르는 문제를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설명해 주고 했거든. 운동화 끈도 묶어주고 ㅋㅋㅋ"

"아빠가 그랬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잘했어. 수학문제 설명을 해주고 나면 선생님보다 아저씨가 쉽게 잘 가르친다고 칭찬을 했었어. 고등학교 때는 그림만 그렸을 거야. 물론 공부는 내가 더 잘했고 우영이는 만화를 잘 그렸지. 하하하."

"운동화 끈은 무슨 얘기예요?"

"우영이는 운동화 끈이 풀려도 그냥 다녀서 아저씨 가 물었더니 못 묶는대. 그래서 묶어 줬는 귀찮으니까 아저씨한테 해달라고 한 거 같아."

"하하하. 아빠 네요. 또 없어요?"

"들 덥다고 하는 계절에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다녔어."

"애들 아빠가 추위도 잘 타고 계절마다 옷을 정리해 주지 않으면 구분 없이 입기는 했어요. 요즘 같았으면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닌다고 아동학대 의심 신고당했을지도 몰라요."

나도 한 소리 보탰다.

"그리고 우영이는 해결할 일이 생기면 툭 던져주고 내가 해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족한 답을 얻으면 또 엄청 기뻐하면서 칭찬을 해주고...

자기가 만든 게임을 설명하면서 팔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오면 아저씨가 문제점을 분석해 주면 천재라고 감탄하고 다시 만들어서 오고는 했었어."

"아빠 모습이 상상이 돼요."


아이들에게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빈 컵 하나하나에 물을 채워주고 먹을 것을 챙기는 재욱 씨의 모습에서 자식들을 두고 떠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을 친구를 대신하는 아빠의 마음을 보았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편이 재욱 씨와 절친인 이유를 찾아냈다. 본인들은 없지만 상대는 갖고 있는 점들에 집중했던 것 같았다. 그것이 질투나 경쟁이 아니고 만족이나 위안으로 삼으면서 부족한 것은 가끔 메꿔도 주는 사이로 보였다. 처음 내가 남편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식사 후 납골당에 들렀다. 감정기복이 없고 AI 같은 재욱 씨가 눈물 가득 담은 모습으로 남편에게 대답할 수 없는 안부를 묻고 있었다. 슬픈 장면...


막내가 부르는 전시회 추모곡 녹음이 저녁에 있어서 서울까지 내차로 동행을 했다.

"우영이가 번아웃 상태였나 봐요. 페북으로 연락을 가끔 했었는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전하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 해는 오지 않아서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

"코로나 전에 한국에 왔을 때 우영이가 신촌에서 비싼 일식을 사줬어요. 그게 마지막 식사였네요."

"짠돌이가 재욱 씨라 사준 거예요. 저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재욱 씨가 미국이 아니라 남편 가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야, 잘하고 가. 만나서 반가웠어."

다시 만나는 날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유튜브로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재욱 씨가 별거 아니라고 주고 간 쇼핑백이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영양제, 초콜릿, 젤리 그리고 봉투 3개가 있었다. 봉투 안에는 아이들 용돈과 재욱 씨의 명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잘 도착하셨나요. 저는 녹음 잘 끝내고 지금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까 주신 쇼핑백을 열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 용돈까지 넣어 주셨네요. 지난번 부의금도 그렇고 감사합니다. 이 번 까지는 그냥 다 받고 언젠가 아이들이 마음을 더 보태서 보답하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고 답답하고 아팠던 얘기 들어줘서 더더맙습니다. 미국 잘 들어가시길 바라고 재욱 씨와 가족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우영이 좋아했을 거예요."


"덕분에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 밝게 지내는 아이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맛있는 점심과 당근 주스도 대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봉투에 제 명함도 같이 넣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의 절친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미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족 모두 건강히 잘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

나는 아이들에게 재욱 씨의 봉투와 문자 메시지를 전달했다.



명함 한 장 속에 담긴 친구의 마음은
그 어떤 긴 편지보다 진한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