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선물로 따뜻한 밥상을 받았습니다.

by 앞니맘


아침 일찍 우리 집 건너편 절에 사는 스님께 알림톡이 도착했다.

"잘 지내시나요? 시간이 괜찮으면 점심 먹으러 오세요."

스님 카톡을 보고 잠깐 고민했다. 사실 몇 개월 전에도 연락이 왔지만 찾아가지 못했다. 그때는 내 몸과 마음이 아무하고도 마주하기 싫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무슨 하실 말씀 있어요?"

아주 건조하고 방어적인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노동처럼 느껴졌다. 특히 스님은 나에게 어려운 분이기 때문에 그런 긴장감은 내가 피하고 싶은 만남이었다.

"특별하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니고요. 밥이 부담스러우면 차 한잔하고 가요. 들릴 수 있는 시간만 알려줘요."

스님의 부탁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다.


스님과 인연은 유치원 교사를 시작한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유치원 개원 과정을 도와주신 스님이다. 달력에 등장하는 동자승처럼 작고 동그란 얼굴, 키는 나와 비슷했다. 스님 모습은 시간이 흘러서 일흔이 멀지 않은 연세가 되었지만 나는 30년 전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당시는 버스를 사도 배달 비용을 따로 지출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대형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던 스님이 전라도 광주까지 가셔서 유치원 버스를 직접 끌고 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긴 시간 동안 별 연결 없이 살았다. 그런데 주택을 짓고 이사 온 동네가 스님 절과 가까웠다. 연꽃을 좋아하는 스님 덕분에 집 주변이나 산책로가 온통 연꽃밭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연꽃밭도 점점 사라졌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풍문이 돌았지만, 스님은 여전히 연꽃과 살고 있었다. 어쩌다 산책길에 만나면 가벼운 인사 정도만 눴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님 절에 들러서 물도 마시고 연근차도 사 왔다. 초파일이 되면 가끔 연등을 달았지만 스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스님도 연꽃지 근처, 산 위에 살고 있는 유치원 선생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우리 집 삽사리가 스님 털신을 자꾸 물어 간다고 신발을 찾으러 오셨다. 알고 보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거기까지 돌아다니는 줄은 몰랐어요. 묶어 놓을게요."

당황한 주인의 심정은 모르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땡구의 목을 잡고 말했다.

"아직 어린 데 좀 있다가 묶어도 됩니다. 신발은 이렇게 찾으러 오면 되죠. 그런데 요 녀석이 내 털신만 탐을 내요. 꼬린 냄새가 나서 그런가?"

유머로 마무리하고 털신만 찾아서 돌아갔다. 꽤 먼 길까지 가서 굳이 스님 털신만 물고 오는 이유를 구가 설명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둘 수 없었다. 우리는 땡구에게 목줄을 달았다. 그 일 이후로도 오다가다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할 정도의 관계로 인연을 이어갔다.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가겠습니다."

"그럼 애들 점심 차려주고 12시에 건너와서 밥 먹고 가요. 동우 엄마도 있어요."

동우 엄마라는 말에 부담감을 덜고 절로 향했다.


설날을 하루 앞둔 날씨는 겨울이 아니라 가을의 끝자락 같았다. 걷기에 참 좋았다. 오랜만에 산책하듯 주변을 둘러보며 집을 내려갔다. 큰길을 가로질러 절로 향한 자갈길 접어들었다.

우리 가족이 산책하면서 돌탑을 쌓았던 곳을 지나 항상 예쁜 야생화가 피어있던 작은 농막도 지났다.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던 집을 보면 우리 집 사과는 왜 저렇게 안 열리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길가의 붉은 벽돌집도 지났다. 집을 지나다 생각하니 뭔가 허전했다. 이 길을 지날 때면 행인을 향해 짖어대던 개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보고 '엉엉' 짖어 대면 나도 '왕왕' 짖었다. 묶여있는 개를 화나게 한다고 아이들이 말렸지만 나는 계속 개를 따라 하면서 누가 더 크게 짖는지 시합했었다. 개를 약 올렸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 개는 어디 갔을까? 궁금증을 뒤로하고 걸었다.


좁은 길을 지나서 절 앞, 약수터에 도착했다. 지지난 봄에 딸과 산책을 나와, 이곳에서 물 한 잔 마시고 꽃잔디가 화려하게 폈던 화단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 먼저 하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공양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휴, 원장님~"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나를 보고 다가오는 동우 어머니를 향해 나도 팔을 벌려 서로를 안아 주었다.

"아이들은 잘 있죠? 태권도는 계속하나요?"

태권도 선수였던 동우의 소식을 물었다.

"고1 때 그만두고 지금은 공부하고 있어요. 이제 고3 올라가요."

그동안 운동했던 과정과 포기했던 이유를었다. 동우 어머니는 스님을 도와 공양주를 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다 성실하고 성품도 좋잖아요. 운동했던 근성이 있어서 마음먹은 대로 공부도 잘할 거 같은데요. 이렇게 뵈니 참 좋네요."

동우 엄마는 유치원에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말없이, 보이지 않게 봉사해 주셨던 학부모다.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도 참 예쁜 남매로 또렷하게 기억되는 가족이다.


"원장님 여기 앉으세요. 식사 준비할게요."

동우 엄마의 안내로 자리에 앉았다. 기도를 끝낸 스님이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곧 상이 차려졌다.

"절밥이, 다 그런데 오늘은 기도가 있어서 그래도 먹을 게 조금 있어요. 그래서 오라고 했어요."

스님이 의자에 앉았다.

"스님, 제가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가끔 필요해서요."

밥상을 보자 사진으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빠르게 사진을 찍고 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어서 나박김치 한 숟가락을 떠 넣었다. 시원한 국물에 아삭한 무와 배추가 입맛을 돌게 했다.

"여기서 직접 구운 김이라 맛있어요."

김을 내 앞으로 밀어주며 스님이 말씀하셨다. 특별한 질문이나 위로 없이 밥을 먹었다. 우리 집 앞에 비포장 길이 곧 포장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길옆에 고추밭 아저씨의 횡포에 가까운 행동을 공유했다.


식사가 끝나고 맛있는 과일과 연잎 차도 마셨다. 님이 떠났던 순례길의 기록이 담겨 있는 달력을 보면서 사진에 담긴 사연과 연꽃 재배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손목 한 번 내밀어 봐요."

염주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들고 말씀하셨다.

"이 팔찌는 내가 재배한 연꽃씨로 직접 만든 염주니까 갖고 싶다는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하세요. 손목에 딱 맞게 만들어 줄게요."

내 팔목에 맞는 염주를 골라서 끼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져가서 떡국 끓여 먹어요. 이거 주고 싶어서 오라고 했어요."

연꽃 사진과 순례길 사진으로 제작한 달력과 노란색과 자색이 섞인 떡국떡을 한 통 챙겨주셨다.

스님은 다음 기도를 위해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원장님 시간 되실 때 가끔 오셔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 저는 월요일 빼고 매일 있어요."

동우어머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산책 나오면 자주 올게요. 오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오랜만에 나박김치도 맛있게 먹었어요."

"김치 조금 싸드릴까요?"

내 말을 듣자마자 김치를 싸줄 기세로 물었다.

아니라는 손짓을 하고 급하게 문을 닫고 나왔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와 '자주 오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응원이 가득 담긴 세뱃돈 같은 밥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의 부담스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발걸음은 기운을 었다.


기름기 없이 차려진 소박한 밥상과
말없이 안아주는 손길이
어떤 멋진 말보다
힘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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