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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Feb 03. 2024

엄마의 손칼국수를 좋아한 또 한 사람


"오늘 칼국수 먹으러 갈까?"

퇴근 준비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톡을 보냈다.

"엄마, 요즘  칼국수 먹으러 가자고 자주 하네. 칼국수가 그렇게 맛있어?"

아이들의 반응에 핸드폰을 들고 움직이던 손가락을 잠시 멈췄다.

"엄마가 아빠 빙의 됐나 봐. 요즘 들어 계속 면이 땡긴다."


남편은 면 종류를 좋아했다. 요리에 제주가 없는  남편은 내가  만들어 주는 면 요리를 더 좋아했다. 반면에 나는 약한 소화력 때문에 면을 즐기지는 않았다. 요즘  마트에 가면 라면은 물론이고 칼국수, 쌀국수, 수제비, 쫄면 할 것 없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키트를 팔고 있어서 요린이도 어려움 없이 조리를 해서 먹을 수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조리키트가 많지 않았다. 래서 나는 칼국수나 수제비, 짬뽕을 에서 들어 먹었다.


멸치육수에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다가 주걱을 뒤집어서 반죽을 그 위에 펼친다. 숟가락을 뒤집어 잡은 손잡이를 이용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반죽을 끊어육수 속으로 '퐁당퐁당' 쓸어내듯이 만든 수제비나  묶은지가 되기 의 김장배추를 잘게 썰어서  넣고 밀가루 반죽을 펼쳐서 손으로 떠 넣고 끓인 김치 수제비도 좋아했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손 칼국수였다. 손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엄마가 처음 만들어준 칼국수 얘기를 했었다.


"엄마, 나왔어."

남자친구를 데리고 처음으로 친정에 가던 날 엄마는 별다르게 놀라지 않고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남자는 초등학교 동네 친구도 데리고 온 적 없던 내가 남자친구라고 데리고 왔으니 눈치 빠른 우리 엄마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화구통을 옆구리에 끼고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남자친구를 보고  들어 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호구조사도 하지 않았고 몇 살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묻지 않았다.

"거기 옆에 끼고 온 통은 뭐여?"

남자친구가 메고 있는 사각형 나무통에만 관심이 있으셨다.

"이거요? 이것은..."

남자 친구는 나무상자를 열어서 종이와 자, 지우게, 화이트, 팬이 들어 있는 화구통 안을 보여줬다.   

"엄마, 만화가야. 우리 학교에 만화과 있잖아. 거기 다녔어."


남자친구는 편안했는지 예의가 없는 사람인지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편안하게 우리 집 아랫목을 차지하고 비스듬하게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일어나서 바르게 앉자 봐. 네가 집주인 같아."

너무 편안한 남자친구의 자세를 바르게 않도록 잡아당겼지만 오래가지 않아서 다시 비스듬하게 누웠다.

"지집 같은가 본데 냅 둬라."

엄마가 주방에서 바구니를 들고 나오면서 남편을 보고 웃으셨다.

"저녁에 뭐 먹을까? 시골이라서 뭐 맛있는 게 없는데. 밭에 나가서 뭐 있나 보려고."

혼자 말처럼 두 사람에게  묻고 있었다.

"칼국수 해줘. 얘도 칼국수 좋아해. 시장에서 사 온 국수로 끓인 거 말고 직접 밀어서 해줘. "

나는 냉큼 대답했다.

 

엄마는 호박과 대파를 들고 텃밭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칼국수를 만들기 위밀가루 반죽을 시작했다. 동그란 함지에 밀가루와 물을 넣고 조물 거리면서 밀가루 덩어리를 만들었다. 덩어리를 치대면서 동그란 반죽모양을 유지한다. 웬만큼 치대고 나서 한쪽에 밀어 놓고 젖은 광목으로 덮어둔다.

"호리야, 거기 밥상옆에 말아 놓은  종이 좀 빼와."

밀가루 포대를 잘라서 만든 누런 종이를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렸다. 동그란 반죽을 메치듯이 던지고 홍두깨로 눌러 가면서 동그랗게 펴나가기 시작했다. 반죽이 동그랗고 하얀 보름달로 변할 때까지 '뒤집었다. 엎었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때마다 하늘에서 눈을 뿌리는 선녀처럼 하얀 밀가루를 반죽 위에 뿌렸다.


홍두깨를 든 엄마 손이 밀가루 반죽판을 굴러 다니며 밀당을 하다 보면 솥뚜껑만 한 하얀 밀가루 피가 만들어졌다. 밀가루를 한 번 더 뿌리고 손바닥으로 스~윽  문질러 주고 난 뒤에 2분의 1을 반복해서 접는다.


도마에 옮길 필요도 없이 종이 위에서 긴 반죽의 중간을 '쓰윽' 잘라서 두 막을 만들었다. 엄마는 종이 잘리지 않고 반죽만을  '슥슥슥슥' 썰기 시작했다. 롤케이크처럼 말려 있는 국수 들고 툭툭 털면 드디어 국수 모양이 되었다.

"칼국수 면을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신기하네요."

남자친구는 칼국수 만들기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처럼 엄마 칼국수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스케치하고 있었다.


솥에서는 멸치육수가 끓기 시작했고 국수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가면서 끓고 있는 솥에  집어넣었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휘휘' 저어둔 다음, 밭에서 따온 호박과 대파를  썰었다.

"저기 친구는 매운 것도 잘 먹나?"

양념장으로 만들 청냥고추를 썰다가 엄가 물었다.

"다~좋아합니다."

나는 매운 것을 싫어해서 양념장 대신 김치를 올려서 먹었는데 아빠가 매운 양념장을 좋아해서 엄마는 양념장을 꼭 만드셨다. 양념장을 만드는 사이에  끓고 있던 칼국수가 '후루루' 끓어올랐다.  엄마는 재빠르게 찬물을 한 대솥에 부었다. 칼국수가 넘치는 것 막고 국수가 잘 익게 된다.


"야, 간이 어떤가 봐."

엄마가 한 숟가락을 떠서 간을 보게 했다. 나도 남자친구도 엄마께 엄지를 내밀어 보였다.


"남자친구라고 처음 데리고 왔는데 먹을 게 없네. 촌이라 먹을 게 없어. 장 본 지도 오래되고  "

칼국수를 한 대접 떠서 남자친구 앞으로 밀어주었다. 원래는 칼국수에는 김치 하나랑 양념장만 올려놓고 먹었는데 그날의 밥상에는 우리 집에 있던 반찬은 다 나와 있었다. 맏사위가 될 것을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직접 만들어 주신 칼국수는 처음이에요. 잘 먹겠습니다."

남편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시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칼국수는 칼국탕이었을까?'

"와~ 진짜 맛있어요. 식당 하셔도 되겠어요."

맛의 평가를 기다리던 엄마는 남편의 '식당' 리엑션에 안심이 된 듯이 칼국수를 드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있어? 우리 엄마솜씨가 그 정도는 아닌데.... 어디 나도 먹어 볼까?"

나는 한 젓가락을 숟가락에 담아서 국물과 함께 입에 넣었다. 잠시 엄마를 바라봤다. 그동안 엄마가 수 없이 해줬던 그 어떤 칼국수보다 맛이 좋았다.

"엄마, 칼국수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진짜 맛있는데?"


엄마는 그날 아끼느라 잘 쓰지 않던 국멸치와 다시마를 평소보다 몇 배 넣고 육수를 내고 특별한 날만 쓰던  다시다를 듬뿍 넣어서 감칠맛을 냈던 것이다.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집에 데려온 남자친구가 사위가 될 확률이 99퍼센트라는 것을  알아채시고 엄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칼국수로 남편을 대접한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면을 밀어서 칼국수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 맛있다는 말에 흥이 나기도 하고 나도 그 일이 그렇게 귀찮거나 힘들지 않았다. 아이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에서 셋이 되고 마트에 가면 다양한 제품의 칼국수가 나오면서 점점 직접 밀어서 만드는 일은 줄어들었다.


"사위, 뭐 해줄까? 칼국수 해줄까?"

"저는 좋죠. 어머니 힘드시다고 애 엄마가 뭐라고 할 텐데요."

"힘들기는 그깟게 뭐가 힘들어."

친정에  때마다 엄마는 처음 만난 그날처럼 밀가루를 반죽해서 칼국수를 만들었다. 사위가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행복해하셨다.


싱크대를 정리하다가 남편이 사다 놓은 인스턴트 칼국수를 찾았다.  내가 끓여 먹었다. 맛이 없다.


'아무것도 아닌 음식도 다 맛있다고 먹어주던 사위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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