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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an 27. 2024

경순 언니네 개떡과 선생님네 파운드케이크


"먹을게 하나도 없네."

냉장고문을 '열었다. 닫았다.' 세 놈이 반복하면서 말했다.

"빵이랑 우유도 있고 과일도  있 먹을 거 천지인데 뭐가 없어. 냉장고에 넣을 자리가 없지."

내가 보기에는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배가 부르는구먼. 하루만 굶어봐 다 맛있걸."

밥상을 놓고 깨작거리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을 내 아이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옆집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들고 나오는 동그란 쟁반은 하얀 소창으로 덮여 있었다. 덮여 있는 소창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군침을 삼켰다. 허술한 담장을 당장이라도 부수고 넘어갈 눈빛으로  쟁반의 이동경로를 따라 내 눈동자는 움직였다.

 

"밥 먹으라니까  거기서 뭐 해?"

독 옆에서 옆집을 바라다보고 있는 나를  엄마가 불렀다.


개나리 나무와 구기자나무로 만들어진 담장을 사이에 두고 초가집과 기와집이 나란하게 있었다. 초가집에 사는 경순언니네 집은 밥 대신 개떡을 많이 먹었다. 우리는 개떡이라고 불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요즘 마트나 길가에서 간식으로 파는 '옥수수빵? 술빵?'과 비슷했다. 나라에서 배급으로 나온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반죽해서 동그란 쟁반 위에서 익히면  크게 부풀어지는 빵이었다. 콩이 나오는 계절에는 콩이 올라갔고 쑥이 아카시아 꽃도 넣어서 만들었다. 가루로 만들어서 찐 것은 모두 떡이라고 불렀던 때라 개떡이라고 불렀지만 쌀로 만들었는지 밀가루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떡과 빵으로 구분한다면 개떡이 아니라 개빵이 맞는 표현이다.  


"할머니, 경순언니네 개떡 쪘어."

화로에서 구운 김을 가로와 세로로 접어가면서 자르고 계신 할머니께 말했다.

"쌀이 떨어졌나?  저녁에 개떡을 어?

내 몫으로 자른 김을 상에 놓아주면서 말씀하셨다.

"경순언니네 개떡이 젤 맛있어."

나는 김을 받아서 흰밥을 올리고 간장을 찍어서 오므리면서 대답했다.

"눈치 없이 거기 가서 자꾸 얻어먹지 마. 엄마가 만들어 줄게."

엄마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쪄주는 개떡은 모양도 맛도 경순언니네 개떡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 경순언니네 쟁반에는 잉어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 쟁반에는 달님이 그려져 있어서 맛이 다른가?"

가마솥에서 꺼낸 개떡이 옆집 개떡과 모양부터 다른 것을 보고 엄마에게 타박을 했다.

"맛은 다 똑같아. 우리는 밀가루만 해서 더 맛있어. 먹어봐."

풍성하게 부풀어 올라야 하는 빵이 주저앉은 모습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막걸리 넣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아줌마한테 물어봐서 만들어봐."

떡도 잘 만들고 짜장면도 집에서 만들어 주시는 엄마였지만 경순 언니가 조금씩 나눠주는 개떡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동생과 내가  분석한 결과, 우리 엄마개떡문제는 발효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밥이 좋지 개떡이 좋아? 경순이는 밥이 좋을 거다."

할머니가 김을 한 장 더 잘라 주면서 말씀하셨다.


"호리야, 이리 와봐."

아주머니가 담장 너머에서 나를 불렀다.

"할머니께 시루떡 잘 먹었다고 말씀드려."

개떡이 담긴 커다란 접시를 넘겨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 맛있는 경순언니에 개떡을 실컷 먹었다.


누군가에게는 주식이었던 개떡맛과  간식으로 얻어먹었던 개떡 맛은 분명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다리를 다치셔서 깁스를 하고 한 동안 학교에 출근을 하지 못하셨다.

나와 친구들은 시내에 있는 선생님댁에 병문안을 갔었다. 우리는 조금씩 모는 돈으로 선생님이 사시는 아파트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를 샀다.

"어서 들어와."

인종을 누루고 기다리는 우리를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너희들끼리 버스 타고 왔어? 기특하네."

선생님은 깁스한 한쪽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잠시 후에 사모님이 작고 예쁜 다과상을 들고 나오셨다.

"얘들아, 먹어봐."

상위에는 투명 유리컵에 주황색 오렌지 주스가 담겨 있었다. 한쪽에는  빵인지 떡인지 모를 것이 네모난 모양으로 썰어져서 접시 위에 비스듬히 올라앉아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포크로 찍어서 입안에 한 입 넣었다. 빵이 혀에 닿는 순간 달콤함이 스르르 녹아들었다. 건포도와 호두의 달고 고소한 맛이 화합하면서 나는 외쳤다.'개떡은 안녕!'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이 떡은 개떡을 버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생일이면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먹고 간식은 계절마다 밭에서 나오는 감자, 시금털털한 텃밭의 과일, 고구마가 전부였던 나에게 신세계를 맛보게 해 줬다. 개떡의 맛에서 벗어나는 우물 안 개구리의 경험이었고 그 맛을 찾아 우물 안에서 나와야겠다는 목표가 생긴 날이기도 했다.


"선생님, 이 빵 이름이 뭐예요?"

접시까지 핥아먹었을 기세로 빵을 먹어 치우고 빈접시를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다.

"맛있어? 파운드케이크야."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낯선 빵이름을 외다. '나도 선생님 같은 어른이 돼서  파운드케이크를 꼭 사 먹겠다'결심을 했었다. 병문안을 갔던 친구들도 선생님집에서 먹었던 빵얘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삼아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시내 빵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그 빵이 생각났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빵은 맛과 모양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비한 빵을 찾아서 진열대를 둘러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찾았어도 빵을 사 먹을 만한 어른이 되기 전이었다.


살다 보니 파운드케이크 말고도 결핍에서 오는 먹거리에 대한 목표는 계속 생겼다. 술(생맥주), 오징어,  딸기등이 그 사연의 주인공이다. 대학시절에는 생맥주를 진짜 맘 놓고 먹고  싶었다. 막걸리나 소주를 사서 학교 잔디밭에서 먹는  말고 제대로 된 호프집에서 생맥주와 안주를 실컷 먹고 싶었다.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타자마자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던 친구들을 찾아가 생맥주를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그 허기는 해소가 되었다. 요즘 딸기와 오징어 값이 비싸져서 잠깐 고민을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을 때는 과감하게 바구니에 는다.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고 재벌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바구니에 담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초임교사가 되던 해, 첫 스승의 날 학부모님이 놓고 가신 빵이 눈에 익었다. 파운드케이크였다. 

 

입맛은 요상하다. 자꾸만 거꾸로 간다. 입덧을 하던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입맛을 잃고 허우적 되던 날에도 깨작거렸던 엄마표 음식들이 위로가 되었다. 나를 사로잡았던 파운드케이크보다는 막걸리 냄새가 나는 듯한 개떡(옥수수빵)에 눈이 가는 내 입맛은 역주행 중이다. 돌아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기는 입맛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간절하게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살맛 나는 일이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일어날 힘이 된다.

아이들 스스로가 채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전에 부모가 알아서 채워주는 시대.
먹을 것은 넘쳐나는데 항상 허기져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나는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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