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댁 선생님의 민어탕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by 앞니맘

‘결혼은 하지만 올해 임신 계획은 없습니다.’
유치원 교사채용 지원 메일의 제목을 보는 순간, 마우스가 멈췄다.
2월에 결혼을 앞둔 경력 교사. 신혼집을 준비하며 새 직장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는 대면 면접 전에 메일을 주고받으며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안녕하세요.”
긴장과 진심이 섞인 얼굴로 마주 앉았다. 내가 커피를 건네자 그녀가 낮게 웃었다.
유치원을 둘러본 뒤 그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집 근처는… 결혼하면 곧 임신할 거라며 면접 기회도 안 줘요. 그래서 ‘임신 계획 없음’이라고 썼어요.”
“임신이 맘대로 되나요? 임신해도 괜찮아요. 많이 낳아야 유치원도 살죠.”
나는 농담처럼 진담을 건넸다. 둘 다 웃었다.


내가 미혼에서 기혼으로 바뀌던 시대, 사회 분위기는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도 나는 일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하고, 금세 복귀했다.
옳아서가 아니라, 그때는 모두 그리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치원교사가 여자가 대부분인 현장은 여전히 팍팍하다. 원아 수가 줄면 운영도 흔들린다.
그래서 경력·임신이 입사에 불리해지곤 한다. 이해되지만, 씁쓸하다.


시간이 흘러 사립유치원도 대체교사 제도가 생겼다. 막내 교사가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받아 몸조리를 갔다. 그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관리자인 나는 제도 바깥에 서 있었다.

늦둥이를 출산하고 교육청에 전화를 걸고서야 알았다. 관리자는 대체교사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마흔셋, 늦은 나이에 제도 밖에서 셋째를 출산했다.


하지만 졸업생 엄마 셋이 번갈아 우리 늦둥이를 돌봐줬다. 이름하여 ‘F4’. 힘들 때마다 서로의 삶을 부축해 준 인연들이 어떤 제도보다 큰 힘이 되었다.


늦둥이 임신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임신성 당뇨로 매일 도시락을 들고 다녀야 했다. 도시락을 들고 식당으로 가는 나를 스님이 불렀다.

“원장님, 오늘은 도시락 말고 이리 와서 먹어요.”
스님방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공양주 보살이 따로 차려준 밥상엔, 비린내 없이 담백한 민어탕이 끓고 있었다. 첫 숟가락에서 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너무 말랐어요. 많이 먹고 힘내요. 애를 둘이나 낳는 동안 내가 신경을 못썼어요."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는 20년의 미안함과 따뜻함이 녹아 있었다.


민어탕 먹고 힘이 나는지, 퇴근길에 아이가 계속 움직임과 뭉치기를 반복했다. 비 내리는 퇴근길,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딸아, 조금만 참아줘.”
하지만 그날 새벽 35주를 채우지 못하고 작지만 울음 큰 아이가 태어났다.

저출산 대책의 성패와 무관하게, 나는 오늘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교사들을 향해 문을 연다.
새댁 교사도 출산 휴가 중이다.



나는, 새댁 선생님의 든든한 민어탕 한 그릇이 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