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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an 13. 2024

영선이네 자취방에는 흰쌀밥과 배추김치가 있었다.


오후자습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적지는 에서 가장 가까운  영선이네 자취방이었다.  새로운 김치가 도착한 날은  자의 자취방이 아니라  우리들의 맛집, 영선이네 자취방으로 직행했다.  대학생인 영선이 언니가 독서실에 가면서 동생 하교 시간에 맞춰서  눌러 놓은 전기밥솥의 밥은 우리를 기다리면서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입구가 가까워지면 취사보온으로 옮겨 가기 직전 밥 냄새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다.

" 냄가 이렇게 좋았었나?"

황소가 뒷발질하듯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방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영선이네 밥은 특히 냄새가 좋아."

선희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언니가 나보고 밥을 왜 그렇게 많이 먹냐고 묻더라 탄수화물 중독이래."

밥 한 솥을 먹어치우는 동생이 걱정스러웠는지 의심스러웠던지 둘 중에 하나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밥을 축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탄수화물? 너네 언니 영양사 공부하시지?"


가 다닌 고등학교는 다른 군 지역에서 유학을  학생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학교 주변의 집들이 하숙집 아니면 자취방이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하숙을 고 가난 집 아이들은 자취를 다. 자취방의 가격도 집의 위치와 건축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났다. 나와 친구 들는 중, 하 수준의 월세를 내는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는 집은 엄마가 밑반찬이나 김치를 해서 1주일마다 챙겨 주고 그렇지 못한 은 재료를 가져와서 해 먹던지 반찬 한 가지로 밥도 먹고 도시락도 싸야 다. 내가 음식을 좀 하는 이유도 오랜 자취 생활에서 터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


생김치를 먹다가 김치가 쉬면 볶음 김치로 전환하고 볶음 김치를 김치찌개로 변신시키는 기술은 하숙집 주인들도 잘하는 방법이었지만 자취생인 나도 음식을 지 않고 다 먹어야 하는 입에서 숙집 아줌마 못지않은 창의성을 발휘해야 했다. 그때 배운 창의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면서 남은 음식을 새로운 이름으로 변신시키거나 시중에서 파는 육개장 한 봉지를 이용해서 한 냄비로 만들어 놓는 마술 같은 솜씨를 보이기도 한다. '맛이 궁금하다고?' 내 답변은 '우리 집 식구들은 편식은 하지 않지만 입맛은 까다롭다.'


우리들 중에 영선이네는 윤기 나는 쌀에 마른반찬과 들기름을 발라서 구운 김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제일 맛있는 반찬은  때마다 보내주는 엄마표 포기김치였다.  우리 엄마가 겉절이처럼 담가준 김치와 비할바 아니었고 밭에서 뽑아준 배추를 가지고 와서 내가 대충 담근  김치는 더더욱 비교가 되지 않다.


"밥 왔다. 밑에 책 깔아. 언니 책 말고 내 문제집 그거 놔."

밥솥을 빼서 행주로 감싸고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오면서 영선이가 말했다.

"상에 놓지 말고 바닥에 내려놔. 솥이 높아서 숟가락질할 때 불편해."

상을 피려는 나에게  선희가 말했다.

"역시 이과."

 밥솥을 통으로 놓고 먹었던  통계를 바탕으로  숟가락질이  편리한 높이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이과나 수학성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밥 솥을 받아서 문제집 위에 올려놓으면 우리는 코를 '킁킁' 거리며 양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흔들었다.

"김치다."

영선이는 위로 가리만 대충 자른  김치를 냉면 대접에 담아서 들고 들어 왔다.

"가위바위보. 오늘은 선희가 당첨."

손으로 찢어야 제 맛이 난다는  우리들만의 철학으로 항상 누구의 손이 희생을 해야 했다. 

"이제 먹어 볼까?"

길쭉길쭉하게 대충 찢은 김치가 도착하면 본격적인 숟가락질이 시작되었다.

밥솥에서 한 숟가락 뜬 쌀밥 위에 쭉쭉 찢어 놓은 김치를 하나씩 올려서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위생 적이라고 손사래를 칠 일이지만 설거지를 최소화한 밥상, 그것이 자취생들에게는 아주 중요덕목이었다.


"너는 행렬에서 뭐 맡았니?"

영선이가 선희에게 물었다.

"나는 유물 1, 너는?"

선희 질문에 잠깐 머뭇거리던 영선이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옷과 옷소매를 끌어내리더니 양손을 반대쪽 소매섭에 넣고 허리를 약간 굽혔다.

"뭐야."

영선이의 뜬금없는 행동에 내가 물었다.

"그냥 백제인"

선희가 잽싸게 일어나더니 책상 위에 도자기로 만든 필통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영선이의 뒤를 따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입에 있던 밥알을 뿜어 내면서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니지. 유물이 더 앞에 서고 백제인은 뒤야."

선희가 영선이를 잡아당겨서 자기 뒤로 세다.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너는 뭐 하니?"

선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합창단이라서 노래."

턱을 앞으로 내밀면서 샐쭉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높이 들었다.

"이것이 젤 편하구먼.  운동장에서 장구 춤추는 애들 봤지? 너랑 나는 음치랑 몸치라서 그냥 유물이랑 백제인이 딱이다. "

본인들의 능력을 바로 인정하는 내 친구들은 쿨했다.

"제일 편한 건 왕비랑 왕 아니야? 마차 타고 손만 흔들면서 앉아 있잖아. 학생 회장이 하는 거 같던데."

"그건 돈도 있어야 하고, 뭐 두루두루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손 흔들어서 뭐 하냐. 유물 나르는 평민은 밥이나 먹자. "

그 말에 또 한 번 웃었고 김치 한 포기와 쌀밥 한 솥을 비웠다.


당시에 내가 살 던 지역은 삼국시대 수도로서 문화제 행사를 아주 크게 했었다. 시내의 도로 한가운데를 몇 천명이 행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그 지역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장구춤을 추는 친구들은 여름부터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다. 각 학교의 인원수와 남녀 비율을 고려해서 시에서 역할을 나눠서 배정했던 것으로 당시 호위무사를 했던 친구가 확인해 줬다. 지금은 학생들이 아니고 업체에 위탁을 해서 진행한다고 한다. 2024년에 고등학생들을 동원해서 지역행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 배불러 공부하러 가기 싫다."

밥 한 솥을 비우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영선이가 말했다.

"야간자습 열심히 나가야 너에 균이랑 서울로 대학가지."

영선이의 책상 위에 있는 쪽지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나에 균이 좋아한다. 여기 봐봐. '만나서 얘기하자.'를 매번 '애기하자.'라고 쓴다. 얘는 어떡해 그 학교 갔나 몰라."

영선이가 균이 한 테 받은 쪽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에 희는?"

"우리 희야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기타도 잘 치고 얼굴도 하얀..."

남자친구 얘기에 야자 갈 생각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개들 따라서 서울로 대학 가려면 빨리 일어나. 야간자습 가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희가 벌떡 일어나면서  베고 있던 방석을 내 얼굴에 던졌다.


남편  없이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쓸쓸할까 봐 멀리 사는 영선이와 이웃동네 선희가 나를 찾아왔다. 선희는 루돌프 머리띠부터 자잘한 소품까지 챙겨 왔다.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웃었다.

"영선아, 쌀밥 대신 고구마로 바꿨냐?"

밥 대신 군고구마로 배를 채우는 영선이에게 물었다.

 ", 고구마 중독이야. 네가 보내 준 고구마는 벌써 다 먹었고 지금 세 박스째 먹고 있어."


찐 친구는 김치와 쌀밥처럼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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