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과 김치, 그리고 우리

by 앞니맘



우리는 자습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학교 근처 영선이네 자취방이었다.

특히 새로운 김치가 도착한 날이면, 각자의 자취방 대신 우리의 맛집, 영선이네로 직행했다.

대학생인 영선이 언니가 독서실에 가면서 동생 하교 시간에 맞춰 눌러 놓은 전기밥솥 밥이 우리를 기다리며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그 밥 냄새는 우리를 미치게 했다.

“밥 냄새가 이렇게 좋았었나?”
황소가 뒷발질하듯 신발을 벗어던지고 방 안으로 뛰어든 선희가 소리쳤다.

“영선이네 밥은 특히 냄새가 좋아.”
나도 맞장구쳤다.

"언니가 나보고 밥을 왜 그렇게 많이 먹냐고 묻더라. 탄수화물 중독이래."

밥 한 솥을 먹어 치우는 동생이 걱정스러웠는지 의심스러웠던지 둘 중의 하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타지 유학생이 많았다. 그래서 학교 근처는 하숙집과 자취방으로 가득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하숙, 가난한 집 아이들은 자취. 나와 친구들은 졸업 때까지 자취.

좀 사는 집은 엄마표 밑반찬과 김치가 주기적으로 도착했고, 그렇지 않은 집은 김치 한 가지로 밥과 도시락을 해결했다.
그때 배운 생존 기술 —
“김치의 변신은 무죄”.
생김치는 볶음김치로, 볶음김치는 김치찌개로.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요리 실력의 시작은 그때였다.


영선이네 밥상은 ‘자취생 밥상’ 중에서도 호화판이었다.
윤기 나는 쌀밥,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 고추장 멸치볶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표 포기김치.

엄마가 밭에서 뽑아준 배추를 가지고 와서 내가 대충 담근 김치와 정성도 맛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밥 왔다! 밑에 책 깔아. 언니 책 말고 내 문제집.”
영선이가 행주로 감싼 밥솥을 들고 들어왔다.

“상에 놓지 말고 바닥에 내려놔. 솥이 높으면 숟가락질 불편해.”
“역시 이과야.”
우리는 통계와 효율로 밥솥 높이를 계산하는 선희를 놀리며 웃었다.

밥솥을 받아 문제집 위에 올려놓으면 우리는 코를 킁킁 거리며 양손에든 숟가락과 젓가락을 흔들었다.


“김치다!”
가위로 대충 머리만 자른 김치가 냉면 대접에 담겨 들어왔다.
“가위바위보! 오늘은 선희 당첨.”
손으로 찢어야 제맛이라며, 누군가의 손을 늘 희생시켰다.

“이제 먹자.”
쌀밥 한 숟가락 위에 길쭉하게 찢은 김치를 얹었다.
입안 가득 밥과 김치가 어우러질 때의 그 소박한 행복.
그건 자취생들의 작은 만찬이었다.


“너는 행렬에서 뭐 맡았어?”

“나는 유물 1.”
선희의 대답에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영선이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옷과 소매를 끌어내려, 양손을 반대쪽 소매에 넣고 허리를 약간 굽혔다.

"뭐야."

"그냥 백제인."

선희가 잽싸게 일어나 책상 위에 도자기로 만든 연필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영선이의 뒤를 따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입에 있던 밥알을 뿜고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니지. 유물이 더 앞에 서고 백제인은 뒤야."

선희가 영선이를 잡아당겨 자기 뒤로 세웠다.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나는 합창단이라 노래.”

운동장에서 장구 춤추는 애들 봤지? 차라리 유물이랑 백제인이 훨씬 좋아..”
그렇게 놀리고 웃으며 밥 한 솥을 비웠다.


내가 살던 도시는 삼국시대의 수도였다. 문화제 때면 고등학생들이 직접 백제 행렬을 재현했다.
그때의 우리도 그 행렬의 일부였다. 유물, 백제인, 장구춤, 호위무사…
그 속에서 웃고 뛰며, 김치와 밥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점점 더 오래전으로 멀어지는 지금—

남편 없이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혹시라도 내가 쓸쓸할까 그 친구들이 다시 내 곁으로 찾아왔다. 선희는 루돌프 머리띠부터 자잘한 소품까지 챙겨 왔다.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웃었다.

"영선아, 쌀밥 대신 고구마로 바꿨냐?"

밥 대신 군고구마로 배를 채우는 영선이에게 물었다.

"나, 고구마 중독이야. 네가 보내 준 고구마 벌써 다 먹었고 지금 세 박스째 먹고 있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찐 친구는 김치와 쌀밥처럼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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