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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Nov 23. 2021

제주도 둘째 날(상)

제주도 여행기

제주도의 둘째 날 비교적 맑은 하늘과 함께 밝 햇살로 시작되었다.

지난날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사라지고 저 멀리 공사 중인 건물 너머 어렴풋하게 보이는 하늘은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젯밤의 먹고 마신 흔적을 말끔히 치우고, 말끔히 새로운 여행의 준비를 마치니 시간은 어느덧 체크아웃 시간. 묵직한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호텔을 나서니 아까 본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흐린 하늘과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아무렴 어떠랴, 비만 안 오면 되지.


지난밤 택시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걸었던 해안 도로를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걷는다.

한 밤중의 거친 파도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에 마음속 깊숙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만, 오전의 흐린 하늘 아래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저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아직 녹색을 벗지 않은 풀밭과 검은 속살을 드러낸 바위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기분 좋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손에 든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을 새가 없다. 기분 좋은 여행길이었다. 음, 처음에는...


1시간가량을 제법 무거웠던 배낭을 메고 걷자니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 대화가 줄어든다. 종종 바다를 향하고, 하늘을 향하던 시선은 바닥으로 고정된다. 간밤의 휴식으로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생각한 발바닥은 금세 피로감을 호소한다. 힘들다. 어제 배웠다. 춥고 힘들 때는 들어가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마침 예뻐 보이는 카페가 눈에 보였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카페에 들어가니 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그 이상으로 좋은 바다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향은 괜찮았지만 맛은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커피를 마시며 유리창 너머의 바다를 감상하고, 슬슬 오늘의 일정을 계획한다.


여기를 가고, 저기서 밥을 먹고, 거기서 짐을 풀고, 저녁은 그 근처에서 해결하는 걸로.


확실히 어제 한 번 해봤다고,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순식간에 일정이 잡혔다. 그러고 나서 힘드니까 택시를 타기로 했다.


치근 제주도에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차량 렌트비용이 부쩍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우리 부부는 발행된 지 10년이 넘은 면허를 그저 신분증으로만 쓰고 있는 사람들이기에(심지어 한국 면허증을 재발급하지도 않았다.) 딱히 운전할 마음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을 택시를 타고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금방 잡은 택시의 기사님은 여행 온 우리 부부에게 이런저런 제주도 이야기와 농담으로 목적지에 데려다주셨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제주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둘이 해서 4000원. 따로 검표하는 인원이 없어서 괜한 돈을 낸 것인가 하는 후회가 조금 들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크고, 볼거리가 많아 정말이지 돈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아니 뭐 사실 검표를 하든 안 하든 입장료가 있으면 입장권을 사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제주의 동식물과, 선사 유적, 그리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물건들을 보고 나면 당연히 배가 고프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무려 말고기 초밥을 파는 곳이었다. 말고기. 그것도 육회로 만든 초밥은 어찌 보면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원체 육회를 좋아하고, 더불어 초밥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저 새로운 먹거리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가게는 생각보다 모던한 느낌의 작은 가게였다. 2인 테이블이 하나 있고, 혼자 앉을 수 있는 작은 협탁이 놓여 있는 테이크아웃을 메인으로 하는 가게. 마침 가니 내부가 가득 차있어 양해를 구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의 외부는 새하얀 모습에 말의 이미지를 단순화 해 놓은 듯한 픽토그램이 그려져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사진을 찍으면 제법 그럴싸하게 나와 아내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놀고 있으니 어느새 자리가 생겨 들어갈 수 있었다.


주문은 말고기 육회 초밥과 말 불고기 초밥을 먹었는데, 한점 한점 사라지는 게 서운할 만큼 우리의 취향을 저격한 음식이었다. 특히 말고기 육회 초밥이 개인적인 취향에는 더 좋았다. 단점은 일단 협소한 가게인지라 먹는 내내 포장하려 줄을 선 사람들에 시선을 느껴야 하며 더해서 창문 밖에서 먹고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전파를 견뎌내야만 한다는 점이다. 혹시 차를 가지고 간다면 포장해서 차 안에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초밥에 맥주를 곁들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는 술을 팔지 않는다. 무알콜 맥주를 음료로 팔기는 하지만, 무알콜은 그냥 무알콜일 뿐 맥주는 아니다. 그 정도가 아쉬웠다. 그 외에는 정말로 완벽하게 나의 취향에 맞았던 식사였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제주시를 떠나 서귀포로 향했다. 한국의 위대한 미술가, 이중섭 작가의 이름을 딴 거리가 위치한 곳에 숙소를 정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잠깐, 한 시간 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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