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작가 조지 오웰의 인생과 글에 대한 열정. 나에게 ⟪동물농장⟫과 ⟪1984⟫는 동화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자유분방함이 이 책에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인간 세상을 비웃는 ‘우화’이기도 하다. 한편 두 책의 공통점은 전체주의의 폐단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것이 정치라는 조지 오웰의 조소가 적나라하게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진실성’을 가장 재치 넘치게 담고 있는 책 두 권이 모두 조지 오웰의 책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는 작가였을 뿐 아니라 저널리스트, 라디오 PD,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여한 군인이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월의 유명한 ‘에세이’ 모음집이자 그의 인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즉, 여러 정체성과 직업을 경험하며 체득한 ‘작가가 글을 대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가 글과 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마 ⟪동물농장⟫과 ⟪1984⟫도 그의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즉, 작가 조지 오웰뿐만 아니라 인간 에릭 아서 블레어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분량이 상당한 편이다(478 페이지).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따로 읽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는 것이 힘든 독자들은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그것부터 읽을 것을 추천한다. 필자도 <나는 왜 쓰는가>를 제일 먼저 읽었다. 조지 오웰이 생각한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책의 제목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마다 찾아보는 문장이다. 그때마다 만나는 조지 오웰은 따라 하고 싶은 선배이자 가슴 따뜻한 어른이며 같이 고민해 주는 동료처럼 느껴진다.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 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글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고독하게 걷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글귀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왜 쓰는가⟫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돌아볼 기회를 건넨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아무리 오래된 영화라도 위대한 고전은 장르와 시대를 초월하듯이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이 진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에세이에는 보편타당한 감동과 설득력 있는 사유가 담겨있다. 하여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었다면 좋겠지만, 전혀 모르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조지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추종했지만, ⟪동물농장⟫과 ⟪1984⟫가 가장 성공을 이룬 것처럼 영국 식민지 정책의 최전선인 인도에서 ‘제국주의’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경험했다. 코끼리와 총 그리고 원주민의 묘한 관계에서 그는 왠지 모를 자격지심에 휩싸였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취향과 대중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의 화해가 곧 작가의 글 쓰기다'라고 말하며 자격지심을 글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1984⟫에서 종결지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수 있을 때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글을 왜 쓰고 있는가?
하지만 세계 전반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수십 년 동안의 흐름은 무질서가 아니라 노예제가 부활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전반적인 와해가 아니라 고대 노예 제국처럼 끔찍하게 안정된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지구의 마지막 모습은 ‘와해’가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안정된 문명사회’ 일지도 모른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진실은 어떤 설명도, 논리도, 주장도 넘어설 수 없다. 전체주의 국가에 적응한 작가뿐만이 아니라, 이를 모른 척하는 모든 작가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이 그런 정신의 몰락에 기여하고 있지 않는지 반드시 돌이켜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주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그에게 정치적 목적의 결여는 쓸모없는 글도 이어졌다.
글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에세이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분
조지 오웰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
읽을 만한 글을 쓰고 싶은 분
나는 왜 쓰는가
저자 : 조지 오웰
번역 : 이한중
출판 : 한겨레출판(2010)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