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브라이언 그린
2022년, 지구로부터 약 135억 광년 떨어진 곳에 가장 멀리 있는 은하 후보가 관측됐다. 135억 광년이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영원(永遠)이 한없는 시간의 지속을 의미한다면 그런 시간이 지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쯤 되지 않을까? 빛도 코스모스에서는 조연일 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한가? 아니, 영원한 존재란 결국 유니콘과 같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반사된 빛이 지구 탈출에 성공하면 시공을 가로질러 우주로 나아간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해도 불멸에 대한 염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천체 망원경을 잘 활용하면 영원처럼 오래된 빛도 볼 수 있다. 수명을 다한 별에서 방출된 빛이 수백만 년 걸려 지구에 도착하면 마치 살아있는 별처럼 보인다.
⟪엔드 오브 타임⟫에서 브라이언 그린도 빛은 증거가 아니라 흔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존재의 시작과 끝에서 인간도 빛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아마도 영원한 존재의 여부를 고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코스모스의 질서 안에서 함께하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념으로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니 밤하늘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나의 존재를 증명했던 모습, 나라는 피사체에 반사된 빛은 또다시 우주로 나가 영원 속에서 헤맬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과 사색은 결국 나의 불멸함, 인간의 영원을 ‘상상’하는 것이자 예술의 가치이자 목적이다. 머나먼 인류의 조상들에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죽음은 한계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이러한 갈증은 영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치즈케이크 같은 예술이 우리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전수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불멸과 영원을 사유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브라이언 그린은 존재의 시작과 끝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의미를 과학적 지성으로 철저하게 설명한다. 그 논거의 주인공은 엔트로피와 진화론이다. 모든 존재의 태초와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물리학 법칙이 존재한다. 영원은 인간에게도 우주에도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주의 법칙, 다시 말해 물리학 법칙을 설명하는 수학적 방정식은 영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시작과 끝을 엔트로피와 진화론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느 정도 해냈다고 생각한다. ⟪엔드 오브 타임⟫은 그런 책이다. 존재의 의미를 물리학으로 설명한 책.
존재에 관한 고찰이 그저 과학적 접근만으로 완벽할 수 없음을 저자도 잘 알고 있었다. 전문 분야인 수학을 최대한 절제하고 적절하게 배치된 인문학적 요소는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따라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은 지적이고 우아하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과학적 개념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엔트로피와 진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와 관련된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무질서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설명은 ‘거시적인 상태에 대한 미시적인 경우의 수'가 바로 엔트로피의 정의이다. 우주는 대부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 즉 복잡하고 무질서한 세계로 점점 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물질에서 마음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개념이 바로 진화론이다. 최초의 생명은 과연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질문에 지금까지 과학은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몇 가지 존재하며 그 설명의 가장 큰 줄기가 바로 진화론이다. 책에서 브라이언 그린은 '진실은 믿음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당연히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생존과 번식의 드라마에서는 단역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진화론적으로 진실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믿음의 영역에서 진실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생존과 번식의 영역에서 진실은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문제에서 유리한 것은 정확성보다는 신속한 이해와 판단이다.
역사를 천천히 돌이켜 볼 필요도 없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기력했는지 알 수 있다. 욕망과 생존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처럼 보인다. 존재 이유에 대해 커다란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무심한 우주의 역사에서 우연히 존재하게 된 호모사피엔스, 하지만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개체라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와 함께 존재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함께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책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것을 넘어 숭고하다. 별의 탄생과 생명체의 탄생 그리고 인류의 기원은 하나로 이어진다.
생명이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엔트로피가 낮은 질서 정연한 배열이 만들어지려면 무언가를 조직화하는 강력한 힘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엔트로피가 낮은, 다시 말해 질서 정연한 배열이 만들어지려면 인위적인 힘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가지 특징이 이 사실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정보 information'다.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생명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하다. 두 번째 특징은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모든 생명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입수하고,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거의 동일하다. 그토록 다양한 지구 생명체들이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
▶︎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조상은 동일한 단세포 생물이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는 두 가지 1)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보’가 동일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매우 비슷하다. 2)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가 ‘에너지’를 입수, 저장, 활용하는 방법이 거의 유사하다.
'무지개 너머'를 포함하여 여러 주옥같은 곡의 가사를 썼던 이프 하버그는 노래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말을 들으면 무언가를 생각하고, 음악적 선율을 들으면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러나 노래를 들으면 생각을 느낀다." 생각을 느낀다. 나는 바로 여기에 예술적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 음악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진실)는 글의 ‘생각’과 선율의 ‘느낌’을 모두 담아낸다는 데 있다. 따라서 “생각을 느낀다”는 말의 의미는 음악의 예술적 진실에 큰 힘을 실어준다. 진화론적으로 생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예술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다.
과학의 힘을 좀 더 일반적으로 활용하려면 확고한 지침에 따라 세포와 분자의 집합(나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외에 '다분히 인간적인' 진실은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때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영혼을 보고 싶다면 예술 작품을 보라."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 과학과 예술이 추구하는 목적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시작과 끝에 관한 과학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분
통합적 사고를 경험하고 싶은 분
친절한 교양 과학을 서적을 읽고 싶은 분
엔드 오브 타임
저자 : 브라이언 그린
번역 : 박병철
출판 : 와이즈베리(202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