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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02. 2023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

⟪깊은 강⟫•엔도 슈사쿠

1.

오랜만에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당연하게도 여행을 떠난 날 비가 왔다고 평생 물을 증오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최근 일본 정부가 역사 왜곡과 비합리적인 결정을 일삼는다고 모든 일본인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문화 콘텐츠의 소비와 정치적 견해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재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하는 법, 생각만큼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책의 뒷면에 짧게 소개된 작품의 주요 내용에서 저자가 기독교와 인연이 깊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첫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신과 인간의 내면은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일왕을 섬기는 특수한 배경 때문에 기독교가 일본으로 수용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 구조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가톨릭을 믿으려는 사람을 향한 핍박과 박해는 가혹했으며, 소수의 신실한 신자만이 버틸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가톨릭 세력은 무척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꾸 종교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이 책을 조각한 엔도 슈사쿠는 작가이자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소설이 다루는 주제도 종교를 떼어놓고 말할 수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종교가 무척 다양하다는 점이다.


특정 종교의 벽에 갇히지 않고 기독교, 가톨릭, 힌두교, 불교 등이 이곳저곳에 적절하게 배치됐다. ⟪깊은 강⟫은 인도로 여행 온 4명이 구원과 절망, 죽음과 삶,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갠지스강과 바라나시에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통해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엔도 슈사쿠는 단순하게 딱딱한 종교적 교리에서 답을 찾진 않는다. 작품 안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정의한 문장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저자는 더 보편적이고 호혜적인 믿음을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신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타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정답을 직접 알려주진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오직 작품을 직접 읽은 독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과 종교를 다루면서 확실한 자기 입장을 말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엔도 슈사크는 자기 신념을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하고 드러낸다. 신과 종교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숭배나 공경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라고, 그래야만 그 의미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종교는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자본주의를 편하게 사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이 작품은 분명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 가지 말하기 망설여지는 게 있다. 특히, 한국 독자라면 어쩔 수 없이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많다. 이런 맥락에서 이 문제는 작품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군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깊은 강⟫이 인간과 종교,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해 좋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지만,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중간중간 가해자의 논리를 비난하는 주장들은 (일본) 스스로에게도 던져보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폭압과 수탈을 일삼은 제국주의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것은 일본의 피할 수 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살펴보면 무척 지루한 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런 답답한 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야말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탁월한 문장도 많기 때문에 읽는 내내 펜과 메모지가 남아나질 않았다. 이 책의 저자는 평생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신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인 ⟪깊은 강⟫은 그 고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이자 작가라는 매력적인 정체성을 가진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깊은 강⟫을 읽을 책이 없어 선선한 가을바람이 가득한 밤을 고독하게 지새울 독자에게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신이란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 엔도 슈사크가 이 작품을 저술한 목적이 눈에 띄게 드러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조금 전 지하실에 발을 들여놓았던 몇 사람에게, 독사와 전갈에 물리고 문둥병을 앓고 굶주림을 견디며 아이들에게 젖을 나눠 주던 여신을 떠올리게 했다. 인도의 어머니. 어머니가 지닌 포근한 부드러움이 아니라, 뼈와 가죽만 앙상한 채 허덕이며 살아가는 노파의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어머니였다.


▶︎ 인도의 성모상이라는 표현 자체에 인간의 선입견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차문다는 기독교라는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도의 여신일 뿐이다.



(당신은) 하고 오쓰는 기도했다. (등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골고다)을 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이미 연기 한 줄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당신은 등에 사람들의 슬픔을 짊어지고, 죽음의 언덕까지 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 위선이란 비난도 결국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할 때 진정성을 가진다. 예수님을 흉내 내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고 있지만 오쓰는 이미 종교인이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3.

인간에게 종교와 신이란 무엇인가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종교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

잔잔하고 차분한 문체를 선호하는 분

인도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


깊은 강

저자 : 엔도 슈사쿠
번역 : 유숙자
출판 : 민음사(2007)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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