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푸르스름한 기운 속에서 나는 유령처럼 깨어난다. 프리랜서라는 섬에 홀로 남겨진 순간, 아침의 의식은 항상 이메일 확인으로 시작된다. 노트북이 깨어나는 소리, 메일함이 열리는 순간의 묘한 떨림. 내 심장은 클릭 횟수만큼 빨라진다. '새 메시지 7개' - 하지만 그저 광고 메일들뿐이다. 화면을 쳐다보는 나의 모습은 마치 수족관 유리에 얼굴을 붙인 물고기처럼 처연하다.
오늘도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카페인의 흑갈색 위로 떠오르는 김은 미래처럼 모호하다.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는 동안 수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춤춘다. 프로젝트 의뢰가 올 수도 있고, 출판사의 연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신함은 텅 비어 있고, 나는 텅 빈 화면에 비친 나의 희미한 실루엣과 마주한다. 기다림은 마치 유체처럼 일상의 구석구석을 채운다. 기다림은 공허가 아니라, 가능성이 채울 수 있는 여백이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희망과 불안의 이중주를 연주한다.
내가 프리랜서를 선택한 순간, 나는 동시에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삶의 파트너를 택한 것이었다. 정기적인 월급날의 안정감 대신, 나는 매일 아침 가능성이라는 복권을 긁는 기분으로 하루를 연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은 가슴을 조이지만, 동시에 무한한 자유의 숨결도 느껴진다. 이메일 확인이라는 작은 의식은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주문과도 같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창 너머로 변화하는 하늘의 색처럼, 나의 하루도 수만 개의 색깔을 품고 있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점차 깨닫게 된다. 개방성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화폭이라는 것을.
유동성이 가득한 계절 속에서도 삶은 조용히 자라난다. 어느 화요일 오후, 내게 주어진 여백의 시간은 마치 빈 악보지처럼 펼쳐졌다. 아무런 일정도, 마감도 없는 시간.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해방감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하지만 유동성은 때로 예상치 못한 선물을 가져온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문장 하나가 새로운 글의 씨앗이 되었다.
예측불가능성이라는 토양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쁨들은 규칙적인 삶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보석들이다. 아침 열한 시, 카페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깊은 향. 오후의 햇살 속에서 읽는 책의 여백이 주는 자유로움.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우산 없이 걷는 방황의 낭만. 이 모든 순간들은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라면 만나지 못했을 경험들이다. 개방성은 마치 뿌리내린 나무처럼 우리의 인생이라는 토양을 풍요롭게 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피어나는 자유, 그것이 유동성이 주는 가장 아이러니한 선물이다.
그날 오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대학 시절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는 둘 다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카페에서 만나 나눈 긴 대화는 서로의 불안과 기쁨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생각보다 많은 걸 이루고 있어. 단지 측정할 수 없을 뿐이지." 친구의 말은 마치 안갯속에서 등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개방성 속에서 서로의 위안이 되었다. 예측 불가능한 삶이 만들어내는 연결의 순간들이 때로는 규칙적인 삶이 주는 안정감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예측불가능성은 때로 우리를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은 숲을 헤매는 다른 방랑자들과 우리를 이어주기도 한다. 그 연결의 순간이야말로 개방된 삶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때로는 아주 작은 선택이 삶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어느 주말 오전, 평소처럼 유튜브를 흘러 듣던 나는 우연히 글쓰기 강좌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10분짜리 짧은 영상이었지만, 화면 속 강사의 진정성 있는 눈빛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료'라는 단어가 보였을 때, 나는 큰 고민 없이 등록을 눌렀다. 어차피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클릭 한 번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강사의 첫 번째 질문, "당신은 오늘 무엇을 썼나요?"는 마치 잠든 내면의 작가를 깨우는 알람처럼 들렸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의 시간 동안, 짧게라도 글을 쓰라는 과제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서 변화가 느껴졌다. 아침의 글쓰기가 하루의 생각을 정리해 주는 나침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작은 결정의 파장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글쓰기 습관은 점차 내 일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단지 일기처럼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하는 수준이었지만, 몇 달 후에는 클라이언트들이 내 글쓰기 능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쓴 이메일의 문체나, 제안서의 구성력을 칭찬했다. 결국 글쓰기는 내 프리랜서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강좌를 마친 지 6개월 후, 나는 글쓰기 관련 프로젝트로만 월급쟁이 시절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작은 선택이 프리랜서로서의 내 정체성을 완전히 재정의했다. 삶의 전환점은 때로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무심코 클릭한 링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거나 과거의 실수를 계속 떠올리며 자신을 괴롭힌다. 어느 겨울 오후, 프로젝트가 연이어 취소되어 불안이 극에 달했던 날이 있었다. 통장 잔고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앞으로 몇 달간의 생활비를 예상하며 공포에 떨었다. 눈앞의 노을빛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보이지 않았고, 친구의 웃음소리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의미 있는 시간들은 결국 현재를 온전히 즐겼던 순간들이었다. 그날 저녁,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한 저녁 식사.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나눈 솔직한 대화 속에 녹아있던 진정한 풍요로움. 레스토랑 창문 너머로 내리던 첫눈을 바라보며 느낀 순간의 평화로움. 그 시간들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페이지가 되었다. 현재에 충실할 때, 과거와 미래의 그림자가 희미해진다.
"오늘은 내일의 기억이 된다"는 깨달음이 드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침에 대청소를 하며 먼지를 털어내는 단순한 행위에서도 명상의 깊이를 발견했다. 오후의 산책길에서 만난 노란 은행잎 하나도 위대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차를 마시며 파도 소리를 듣는 시간은 어떤 성취도 줄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여기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동적인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현재를 사는 방법을 배우면서 나는 조금씩 변화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대신 현재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커졌다. 프리랜서로서의 개방성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각 순간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 그것이 예측불가능한 미래를 마주하는 가장 단단한 근육이다.
작은 화분에 심은 씨앗은
내 마음도 함께 심는 것이더라
물방울이 잎새에 맺히듯
우리의 노력도 언젠가 빛나요
뿌리는 보이지 않아도
그 힘으로 꽃은 하늘을 향합니다
실패한 가지치기도
자람의 한 조각이 되는 법
오늘은 당신의 성장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