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좀 자주 해." "너도 이제 건강 챙겨야지." "반찬은 있냐? 무생채 무쳐놨으니까 가져가." 첫 직장을 잡고 월세방에서 자취하던 시절, 주말이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계절이 바뀌어도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나무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싫었던 시절, 어머니의 연락은 그저 귀찮은 참견으로만 느껴졌다. 대답은 대부분 건성건성. 짧고 맥 빠지는 "네" 아니면 "어"가 전부였다. 유독 긴 잔소리가 이어지는 날이면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마요"라며 통화를 서둘러 끊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순간이 부끄럽고도 아프다.
어머니가 기어코 집에 찾아오신 날이 있다. 청소도 빨래도 잘하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다고 매번 말해도,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겠는지 정말로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힘드니까 돈 걱정 말고 택시 타고 오시라 했는데, 결국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오셨다. 문을 열자 어머니의 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에 괜히 화가 나, 방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말은 "왜 왔어." 얼굴에 스친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입술을 깨문 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내가 쏘아붙인 말은 허공에 얼어붙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웠다. 어머니가 맨 먼저 한 일은 청소와 빨래, 그리고 그 위에 덧칠해진 잔소리였다. 그저 고맙다고 말하면 될 텐데, 나는 "나중에 못 찾으니까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울컥하고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좁은 방의 소파에 앉아 이런 말을 하셨다. "너 어릴 때 자다가 열이 너무 올랐는데, 병원 가는 길에 네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안 놓더라." 나는 그 기억이 없었다. 어머니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의 가방엔 늘 감기약이 있었다고 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아래, 어머니의 얼굴은 희미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선명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 안에서 굴러다니던 말들은 결국 꺼내지 못한 채 조용히 삼켜졌다.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마음을 열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그 짧은 말들이 가슴에서 입술까지 오는 길이 때로는 우주를 건너는 것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은 날은 해가 쨍쨍히 비추던 한낮이었다. 손은 운전대를 잡고 있었지만, 머리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햇살은 창문을 통해 자동차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는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한 달 전에 보았던 얼굴이 아니었다. 갑자기 시간이 빨라진 것 같았다. 수척해진 얼굴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마치 현실을 거부하듯이.
똑똑히 기억한다.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보며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나를 향한 후회였다. 말하지 못했던 말들, 보여주지 못했던 마음들, 밀쳐냈던 순간들, 귀찮게 여겼던 잔소리들.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그제야 나는 얼마나 못난 아들이었는지를 알아차렸다. 우리가 놓친 순간들은 강물처럼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 맑아 오히려 잔인해 보였다. 어머니는 약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몸은 상하셨지만, 다행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실 수 있었다. 이제 병원에 올 일은 없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희망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희망은 불안한 미래를 감추려는 방어기제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어느 날 저녁, 병원 근처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없으면, 이건 네가 챙겨라." 나는 웃으며 "무슨 소리예요, 엄마"라고 했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그 순간 가을의 마지막 낙엽이 우리 앞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그 낙엽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떨어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새기는 듯한 그 눈빛.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낙엽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별은 그렇게 예고 없이, 그러나 아주 천천히 시작됐다. 가을이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와 짧아지는 햇살 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세월은 결국 나를 그 말들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게 했다. 야속하리만큼 평범했던 어느 하루,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창밖엔 햇살이 가득했고, 병실 안은 너무 고요했다. 모니터에서 심장 박동을 알리던 소리가 멈추고,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던 그 순간에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낯설고 잔인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이토록 소리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병실 구석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입술이 마르고, 손끝은 차가웠고, 가슴 안쪽은 텅 빈 바람처럼 휑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 순간에 무너지기보다 오히려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의 흔적이 사라지고 평화로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오랜 여행 끝에 마침내 집에 도착한 사람처럼. 상실이란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알던 세상의 지도가 완전히 다시 그려지는 일이다. 그날의 침묵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때로는 그 침묵이 나를 덮치고, 때로는 그 침묵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름을 불러야 할지,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지,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단 한마디였다. "안녕, 엄마." 그 말을 삼킨 채로 나는 가만히 손을 잡았다. 이제는 식어가는 그 손이, 나를 처음으로 안아주었던 손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말을 했을지 상상해 본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안녕, 아들." 나는 관 위에 그 말을 남겼다. "엄마, 안녕(安寧)." 평안하게 잠드소서라는 뜻을 담아. 장례를 치르는 내내, 동네 소반에서 배달시켜 먹던 떡볶이 맛이 어떤지, 저녁에 잠은 잘 자는지, 감기는 안 걸렸는지 물어보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어쩌면 삶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기에는 늘 조금 늦은, 그런 아쉬움의 연속.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내 삶 곳곳에 어머니의 말들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말마다 울리던 전화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주말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마치 무의식 속에서 그 습관이 각인된 것처럼. "무생채는 오래 두면 안 돼, 물 생긴다"는 그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장을 볼 때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과일을 집었다가 문득 현실을 깨닫곤 한다. 어머니가 남긴 반찬통은 아직 냉장고에 있다. 꺼낼 수도, 버릴 수도 없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작은 공간처럼.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물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투와 손길, 잔소리 같은 것들이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것들을 닮아 있었다. 말투도, 혼잣말하는 습관도, 괜히 걱정부터 앞서는 마음까지도. 수건을 정리하는 방식, 양말을 개는 손놀림, 심지어 전화기를 드는 각도까지. 어머니는 물리적으로 사라졌지만, 나의 일부가 되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사랑했던 이의 부재는 끝이 아니라 변형이다. 그들은 우리 안에 목소리로, 습관으로, 기억의 지도로 새겨져 계속 살아간다. 가끔은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어머니와 똑같다는 걸 알아차릴 때면, 슬픔과 따스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것은 상실의 아픔을 달래는 작은 위로가 된다.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어머니가 좋아했던 것들이었다는 걸.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습관들이, 어머니가 심어준 씨앗이었다는 걸. 혼자서 이뤘다고 착각했던 행복들이, 결국 어머니 덕분이었다는 걸. 그 말들이 모두 사랑이었다는 걸. 계절이 바뀌듯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드는 일상 속에서도, 어머니가 남긴 흔적들은 흐려지지 않는다. 때로는 좁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다 문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하고 싶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잘 지내요. 당신이 남긴 말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잘 살고 있어요. 가끔은 반찬통이 비어갈 때, 당신이 채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퍼요. 하지만 당신이 채워준 마음은 여전히 가득하다는 걸 알아요. 봄이 오면 당신이 좋아하던 개나리가 피고, 겨울이면 당신이 싫어하던 칼바람이 분다는 걸 생각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요. 어쩌면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과 기억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가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내 일상을 지켜보고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랬듯이, 나도 내 방식대로 꿋꿋이 살아갈 테니까요.
그리고 다음 생에는, 내가 더 많이 말할게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말들을.
안녕, 엄마.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남긴 사랑으로
오늘도 나는 나답게 살아갑니다.
침묵 속에서도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