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3시 17분, 작업실 모니터에는 미완성 원고가 떠 있었다. 커피는 이미 식었고, 창밖으로는 희미한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클라이언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정 사항이 좀 많네요. 다시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18년간의 엔지니어 생활에서도 익숙했던 피드백이었지만, 프리랜서가 된 후엔 왠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노트북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지쳐 보였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대학 동기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 회사 그만둔 지 꽤 됐지?"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응, 괜찮아. 나름대로 잘하고 있어." 통화를 끝내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방금 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불규칙한 수입, 불확실한 미래,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 그 모든 것들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라는 두 글자는 마치 오래된 프로그래밍 코드처럼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우리는 '괜찮은 척'이라는 기본값으로 살아간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도 겉으로는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처럼.
저녁 무렵, 어머니가 쓰시던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머니께는 끝까지 괜찮다고만 했었다.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엄마 걱정하지 마. 나 잘 지내고 있어." 그때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힘들다고, 무섭다고, 엄마가 필요하다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찻잔의 김처럼 흩어졌다. 창밖의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결심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오늘부터는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겠다고.
토요일 오전 11시, 단골 카페에서 프리랜서 동료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2년 먼저 회사를 나온 선배였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솔직히 요즘 어때?" 나는 잠시 망설였다. 또 "괜찮아"라고 할까 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사실... 많이 힘들어. 이 길이 맞는지 매일 의심하고 있어." 그 순간,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처음 2년은 정말 지옥이었어. 매일 새벽에 불안으로 깼고, 통장 잔고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지." 우리는 두 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불안정한 수입, 외로운 작업 시간,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서로의 상처를 꺼내놓고 보니, 똑같은 모양이었다. 진실은 거울과 같아서, 내가 먼저 보여주면 상대도 자신을 보여준다. 카페를 나서며 그가 말했다. "우리 정기적으로 만나자. 이 길은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롭잖아." 처음으로 동료가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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