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5일 월요일 오전 9시 47분.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월요일이었다. 창밖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히 지나갔지만, 나는 잠옷 차림으로 부엌에 서서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드립 포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묘한 죄책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18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된 첫 월요일. 알람 시계 없이 맞는 아침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눈을 뜬 것처럼 낯설고도 경이로웠다. 커피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햇살에 비쳐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첫 한 달은 완벽한 봄날 같았다. 평일 오후 2시에 한강공원을 산책하고, 사람 없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원하는 시간에 낮잠을 자는 일상. 친구들이 "월요병이 심하다"며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도서관의 평일 낮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할머니들이 신문을 보시고, 취준생들이 조용히 공부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소유하는 것이었다.** 매일이 일요일 같은 그 시절, 나는 드디어 삶의 리듬을 되찾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계절은 언제나 순환한다. 어느 날 저녁, 통장 잔고를 확인하던 순간 봄바람 같던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숫자들이 말해주는 현실은 명확했다. 고정 수입이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불규칙한 수입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사 건물들의 불빛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저 안의 사람들은 적어도 다음 달 월급날은 확실하게 알고 있을 텐데.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처음으로 자문했다. "내가 잘한 선택일까?"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엑셀 파일을 열고 향후 6개월치 생활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꿈꾸던 자유의 이면에는 차가운 책임의 무게가 도사리고 있었다.**
수요일 새벽 3시 14분. 또다시 잠에서 깼다. 천장의 희미한 빛 자국을 바라보며 내일, 아니 오늘 마감인 원고를 떠올렸다. 프리랜서가 된 후로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 다닐 때는 상사의 눈치를 봤다면, 이제는 클라이언트의 메일을 기다리며 초조해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은 지 일주일.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다른 작가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베개를 뒤집으며 다시 눈을 감았지만, 불안은 마치 여름밤의 모기처럼 윙윙거리며 잠을 쫓아냈다.
가장 힘든 건 아플 때였다. 작년 11월,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꼼짝 못 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노트북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병가라는 개념이 사라진 삶에서 아픈 것은 곧 무수입을 의미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면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번 달은 버틸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그들은 아파도 월급은 나올 테니까. **프리랜서의 자유는 안전망 없는 곡예사의 공연과 같았다. 매 순간이 스릴 넘치지만,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콩나물국이 그리웠다. 혼자 사는 작은 원룸에서 나는 처음으로 깊은 고독을 느꼈다.
불규칙한 수입은 마음까지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큰 프로젝트를 따낸 날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가도, 견적서가 거절당하면 바닥까지 떨어졌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나날들. 특히 월말이 가까워올수록 불안은 극에 달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는 것도 망설여졌다. '이 5,000원이 월말에 필요하면 어떡하지?' 그런 계산이 일상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줄어들었다. "요즘 바빠서"라는 핑계 뒤에는 불안정한 수입이라는 진실이 숨어있었다. 가끔 SNS에서 회사 동료들의 회식 사진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이 불평하는 회식 자리가, 적어도 안정적인 소속감을 주는 것 같아 보였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나는 매일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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