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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비교하지 않는 연습

by COSMO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을 때

목요일 밤 11시 43분,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던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대학 동기의 승진 소식이었다. "드디어 팀장이 되었습니다. 믿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축하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보며 나는 조용히 화면을 껐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니 형광 별 스티커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초등학생 때 붙였던 그 별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가슴 한가운데서 시작된 묵직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너는?" 속으로 되뇌는 질문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혔다. 18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된 지 3년. 처음엔 자유로웠다. 아침 회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해방감에 취했다. 하지만 SNS 속 동료들의 성장 스토리를 볼 때마다 의구심이 든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 걸까? 월급날이 정해지지 않은 불안정함,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 비교는 영혼을 갉아먹는 조용한 독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특히 새벽의 고요 속에서 그 독은 더욱 진하게 퍼진다.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일어나 작업실로 향했다. 노트북을 켜고 미완성 원고들을 하나씩 열어봤다. 3년 동안 쌓인 글들. 출간되지 못한 기획서들, 거절당한 원고들,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 문득 회사 다닐 때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글 쓰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때는 단순한 칭찬으로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예언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글쓰기로 먹고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이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왜 나는 자꾸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까.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이 새벽,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작년 11월, 중요한 출판 기획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동료 작가 세 명이 연달아 출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해!" 진심으로 기뻐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지쳐 보였다. 3년째 다듬고 있는 원고가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신용산역에서 내려 무작정 한강으로 향했다. 차가운 11월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그 시린 감각이 오히려 나를 깨어있게 했다.


이촌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강물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혼자가 되고 싶을 때마다 찾는 곳이었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흘렀고, 그 모습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그때 옆에서 운동하던 할아버지가 잠시 쉬려고 벤치에 앉으셨다. "젊은 사람이 한숨이 깊네." 무심한 듯한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제 나이 또래들은 다들 자리를 잡아가는데, 저만 아직도 헤매는 것 같아서요." 할아버지는 잠시 강물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강물도 보면 빠른 곳이 있고 느린 곳이 있지. 근데 다 바다로 가는 건 똑같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같은 바다를 향해 간다. 그 단순한 진리가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날 이후 무언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불안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출판사에서 거절 메일이 와도 "아직 준비가 덜 됐구나"라고 받아들였다. 대신 피드백을 꼼꼼히 받아 원고를 수정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글 쓰는 시간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전에는 '빨리 결과를 내야 해'라는 압박감에 시달렸다면, 이제는 그저 오늘의 글에 집중했다. 매일 오전 5시에서 8시까지, 그 3시간은 오롯이 나와 글이 만나는 시간. 커피 향과 함께 시작되는 그 고요한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충만한 순간이 되었다. 석 달 뒤, 작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원고를 다시 한번 검토해보고 싶습니다."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한 걸음이었다. 강물이 제 속도로 흐르듯, 나도 내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비교를 멈추고 찾은 행복

비교를 멈추기로 마음먹은 건 쉬웠지만, 실천은 달랐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처럼 손이 핸드폰으로 향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까지. 남들의 아침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어느 날 아침, 화면을 켜려는 순간 멈췄다. '왜 나는 내 하루를 남의 삶으로 시작하는 걸까?' 그날부터 핸드폰을 거실에 두고 잤다. 처음 며칠은 불안했다. 무언가 중요한 소식을 놓치는 건 아닐까, 연락이 늦어지면 어떡하나.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달라진 아침을 발견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첫 햇살, 새들의 지저귐, 커피 내리는 소리. 늘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놀라운 변화는 글쓰기에서 나타났다. 전에는 "오늘은 뭘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오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를 물었다. 조회수나 '좋아요'에 연연하지 않으니 오히려 글이 깊어졌다. 독자의 반응도 달라졌다. "이 글을 읽고 위로받았어요", "제 이야기 같아서 울었어요" 같은 진심 어린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정성은 화려함을 이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남과 비교하느라 잃어버렸던 나만의 목소리를 되찾는 순간이었다.


가장 큰 발견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동네 고양이와의 눈 맞춤, 단골 카페 사장님과 나눈 짧은 안부, 오후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읽은 책 한 페이지. 성공이나 성취와는 거리가 먼 이런 순간들이 실은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친구를 만났을 때도 달라졌다. 전에는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이 부담스러웠다면, 이제는 편안하게 답할 수 있었다. "그냥 내 속도대로 살고 있어. 오늘 아침에 정말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었는데..." 거창한 성과가 아닌 소소한 일상을 나누니 대화가 더 풍성해졌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느라, 이미 충분히 특별한 지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말해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지 모른다. 새벽에 잠 못 들고 남들의 SNS를 훑어보며 한숨 쉬고 있을지도. 그런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나도 여전히 가끔은 흔들린다고. 지난주에도 대학 동창회 모임 공지를 보고 잠시 주춤했다. '가서 뭐라고 말하지? 프리랜서 작가요?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요?'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흔들림조차도 내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유연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교를 완전히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중요한 건 비교를 다루는 방식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자책하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자. 작년 이맘때 쓴 글과 오늘 쓴 글을 비교해 보자. 놀랍게도 성장의 흔적이 보일 것이다. 설령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괜찮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여도, 당신은 매일 하루를 살아내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멈춰 있는 것 같은 물도 사실은 증발하고 응결하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당신의 삶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속도가 정답이라고. 남들보다 늦어도, 돌아가도, 때로는 뒤로 가는 것 같아도 괜찮다고.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다. 목적지에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길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늘도 SNS를 보며 한숨 쉬었다면,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봐주길. 거기엔 당신만의 속도로 흐르는 구름이, 당신만의 리듬으로 흔들리는 나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흔들려도 괜찮다. 당신은 당신의 속도로 충분히 잘 가고 있으니까.




나만 뒤처진 것 같을 때마다,

이 마음을 꺼내본다.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던

그 약속.


속도가 느려도

방향은 잃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날의 나.


지금 조금 늦는다고 해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한다.


잠시 흔들려도 괜찮다.

중심은

내가 다시 잡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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