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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밤

by COSMO

당신의 주말이 잔잔하기를

일요일 밤 11시 23분, 책상 옆 스탠드 불빛이 만든 작은 원 안에서 나는 빈 문서를 바라본다. 프리랜서가 된 지 3년, 월요일의 의미는 예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일요일 밤의 묵직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이번 주 마감해야 할 원고들이 줄지어 있다. 창밖으로는 아파트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고, 도시 전체가 숨을 고르는 이 시간.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내일을 앞두고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까.


18년간의 직장 생활이 떠오른다. 화요일 오후 회의실에서 웃으며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반복해야 하나'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눈 대화는 날씨와 주말 계획뿐이었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 - "나 요즘 너무 지쳐" - 는 김치찌개와 함께 삼켜버렸다. 지금은 혼자 일하지만, 그때의 피로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게가 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우리를 닳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닳음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왔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눈을 감는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원고와 마주해야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엄격해진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침대 시트의 부드러운 감촉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던 근육을 어루만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가 규칙적인 자장가가 된다. 당신도 지금 어딘가에서 비슷한 밤을 보내고 있겠지.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이 일요일 밤을 건너고 있다. 부디 당신의 남은 주말이,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잔잔한 위로로 채워지길. 뜨거운 차 한 잔의 온기처럼, 작지만 확실한 위안으로.


빈틈 사이로 들어오는 위로

목요일 저녁 7시, 원고를 마무리하고 카페를 나선다. 오늘은 중요한 기고문에서 실수를 발견했다. 이미 편집자에게 보낸 후였고, "32페이지가 아니라 23페이지입니다"라고 정정 메일을 보내는 손가락이 떨렸다. 답장은 간단했다. "수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뒤에 숨은 실망감이 느껴지는 건 내 과민반응일까. 엔지니어 시절 프레젠테이션에서 실수했던 기억이 겹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은 실수 하나가 내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변하지 않았다.


길가의 가로등 아래서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콘크리트 틈새, 그 작은 빈틈을 비집고 올라온 노란 꽃. 완벽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오히려 갈라진 틈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자책하는 그 빈틈이야말로, 진짜 우리 다운 무언가가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실수투성이 원고도, 떨리는 손가락도, 정정 메일도 모두 나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오늘도 품고 살아낸 것 역시 나였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욕조에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니, 오래된 페인트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수리를 맡겼겠지만, 오늘은 그 갈라진 무늬가 묘하게 아름답게 보였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천장.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 아닐까. 매끈하게 포장된 겉모습보다는, 솔직한 상처와 빈틈을 그대로 드러내며. 따뜻한 물이 피부를 감싸는 이 시간, 나는 처음으로 내 불완전함과 화해한다. 괜찮다, 빈틈투성이어도. 오히려 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과 바람이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들어주니까.


당신이 믿지 못하는 당신에게

금요일 새벽 5시 47분,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부엌에서 커피를 내린다. 드립 포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갑자기 손이 멈춘다. 다음 주에 중요한 출판사 미팅이 잡혀있다. 1년간 준비한 책 기획의 운명이 걸린 자리.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불안이 기어 올라온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커피 향이 주방을 채우는 동안, 나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린다. 첫 책 출간 제안을 받고도 '내가 작가라니' 믿기지 않아 며칠을 망설였던 시간. 그때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결국 해냈다.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거실 창가에 서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첫 비행기가 구름 사이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탔던 날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버지가 뒤에서 잡아주고 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이미 한참 전부터 혼자 달리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놀라움과 동시에 밀려왔던 자부심. 우리는 늘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이미 충분히 강한데도, 여전히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기를 기다린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식어가는 동안, 나는 내 안의 그 힘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한다.


작업실 서랍에서 오래된 노트를 꺼낸다. 엔지니어에서 작가로 전환하던 시기의 일기들. "오늘도 거절당했다", "내 글이 의미가 있을까", "그냥 회사로 돌아갈까" 같은 문장들 사이사이에 작게 적힌 성취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원고료를 받던 날, 독자의 첫 댓글, 브런치 작가 승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듯, 매일의 작은 용기들이 쌓여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다음 주 미팅도 그저 그런 여정의 한 지점일 뿐이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더듬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노트를 덮으며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넌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 이번에도 네 방식대로 전하면 돼."


우리가 서로의 숨이 되어줄 때

화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여성이 노트북을 펴고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화면에는 빈 문서가 떠 있었고, 그녀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몇 년 전의 나, 아니 어쩌면 오늘 아침의 나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메모지에 적었다. "첫 문장이 가장 어렵죠. 그냥 아무거나 써보세요. 지우면 되니까요." 커피를 리필하러 가면서 살짝 그녀의 테이블에 놓고 갔다.


돌아왔을 때, 그녀는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짧은 교감 속에서 우리는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동료가 되었다. 때로는 "힘들죠?"라는 한마디가, "저도 그래요"라는 공감이, 작은 격려가 누군가의 막힌 길을 열어준다. 카페를 나서며 뒤돌아보니,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그녀가 첫 문장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녁 무렵, 브런치에 올린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작가님 글 덕분에 오늘도 글을 씁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화면 앞에서 홀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고독한 작업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계속 써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서로의 숨이 되어준다. 오늘 내가 쓴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막막한 밤을 견디게 하고, 누군가의 용기 있는 시작이 다시 나에게 힘을 준다.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닌, 이 거대한 이야기의 연결 속에서.




이번 주도 잘 견디셨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해냈고,

가고 싶지 않은 자리도 다녀왔고,

말 못 할 마음을 삼키며

조용히 버텨낸 날들도 있었죠.


주말이 다 가버린 지금,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당신이 그만큼 애썼다는 증거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번 주도,

당신은 충분히 잘 살아냈습니다.


내일이 또 시작되어도

당신은

생각보다 더 잘 해낼 겁니다.


나는,

그걸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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