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17분, 노트북 화면의 푸른빛이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비춘다.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커서만이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텅 빈 문서 창은 마치 나를 기다리는 무언의 친구 같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고, 어디선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멀어져 간다. 이 고요한 순간, 나는 또다시 그 익숙한 질문과 마주한다. "오늘은 뭔가 써낼 수 있을까?"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맴돌지만, 첫 문장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 발끝으로 수온을 재는 아이처럼.
지난겨울,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낸 후 글이 전혀 써지지 않던 밤이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니?"라는 평범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자신이 못내 서글펐다. 그날 밤, 하얀 문서는 유독 더 차갑게 느껴졌다.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이 흘렀지만, 단 한 문장도 남지 않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빈 페이지가 두려운 건, 그 안에 비친 텅 빈 내 마음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었다. 이 여백이야말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것을. 씨앗을 심기 전 땅을 고르듯, 글을 쓰기 전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노트북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의식은 어느새 나만의 기도가 되었다. 어떤 날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했고, 어떤 날은 쓴 것보다 지운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찻집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듯, 나는 영감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기다렸다. 책상 위 머그잔에서 올라오는 커피 향이 식어갈 때까지, 창밖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갈 때까지. 그 고요한 기다림 속에서 나는 천천히 배워갔다. 여백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채워질 준비를 하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것을.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매일,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빈 페이지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4월의 어느 화요일 새벽 2시 43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리듬이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찻잔을 입술에 대고 뜨거운 김을 불어내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서 문장 하나가 번개처럼 스쳤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요."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선율을 만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막혀있던 수도꼭지가 갑자기 터진 것처럼, 문장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뒤, 화면에는 2,000자가 넘는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아 다시 읽어보았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그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게 바로 기적이구나.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기적이 아니었다. 침묵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가장 고요하고 확실한 열매였다. 씨앗이 땅속에서 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싹을 틔우듯, 내 안의 이야기도 충분한 숙성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된 것이다. 그날 새벽,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작은 승리였지만, 그 어떤 대단한 성취보다 값진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글이 술술 써지는 날과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쓰지 못하는 날도 쓰는 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농부가 휴경기를 두듯, 창작자에게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그 리듬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느 유명 작가가 말했듯이, "글쓰기의 90%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이 진리였다. 기적은 번개처럼 오지만, 그 번개를 맞을 수 있는 피뢰침은 일상의 꾸준함으로 만들어진다. 오늘도 나는 같은 곳에 앉는다. 기적이 올지, 침묵이 계속될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곳에 있는 것, 그 자체다.
작년 가을, 오래된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5년 전에 쓴 글들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하나씩 열어보았다. 첫 문장부터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늘도 역시나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나는 정말 글쓰기에 재능이 없나 보다." 서툰 문장들, 어색한 표현들, 그리고 무엇보다 글 곳곳에 배어있는 불안과 조급함.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읽어갈수록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줄 몰랐겠지. 날마다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고마웠다. 성장은 계단이 아니라 나선형이다. 같은 자리를 도는 것 같아도, 우리는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친구가 물었다. "요즘 글 쓰는 거 어때? 잘 되고 있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여전히 막막한 날이 많고, 쓴 글을 다음날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게 있다. 예전에는 못 쓰는 날이면 자책감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그저 "오늘은 이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정원사가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묵묵히 물을 주듯, 나도 글이 나오지 않는 날에도 내 시간을 지킨다. 보이지 않는 성장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내면의 토양은 점점 더 비옥해지고 있는 것.
요즘 가끔 초보 작가들의 모임에 나간다.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5년 전의 나를 본다. "도대체 언제쯤 글이 잘 써질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자라고 있어요. 단지 그 성장이 너무 미세해서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에요." 가장 위대한 변화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변화들의 축적이다. 날마다 쓰는 한 문장, 날마다 읽는 한 페이지, 날마다 품는 한 가지 생각. 이 모든 것이 쌓여 어느 날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지난주 수요일 오후 3시, 일상적인 순간이었다.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혼자 국밥집에 들어갔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평범한 한 숟갈에서 시작된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급하게 적었다. 그 문장이 씨앗이 되어, 그날 저녁 3,000자짜리 에세이가 완성되었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던 글이 바로 그 글이었다. 특별한 영감을 기다리며 보낸 수많은 밤보다, 평범한 점심시간에 찾아온 한 줄이 더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기적은 드라마틱한 순간이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 앞에서도 일어난다.
이제는 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들이 그렇다는 것을.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순간이 아니라 매일 아침 "잘 잤어?"라고 묻는 평범한 인사에서 자란다. 성공은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연습실에서 만들어진다. 행복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 속에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 순간'은 사실 날마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너무 평범해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
오늘도 나는 평범한 하루를 산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열고, 빈 문서와 마주한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루틴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마법을 안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칠 그 문장이, 지금 이 순간 내 손끝에서 태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실하게 여기 있는다. 기적을 기다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적이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을 꾸준히 살아가는 것이다. 화려한 영감을 쫓아 헤매는 대신, 조용히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한다.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큰 지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는 게
글쓰기의 70%다.
아이디어는 없을 수 있어도
자리는 비우지 않는다.
머릿속이 비어 있어도
책상에 앉는 건 채워지기 위한 준비다.
기적 같은 문장이 나오는 날은
대부분 그렇게
평범한 날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