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는 커서가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명멸한다. 텅 빈 문서 앞에서 나는 또다시 첫 문장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작업실 스탠드의 노란 불빛이 만든 작은 원 안에서, 식어버린 커피와 함께 새벽을 맞이하는 일이 이제는 익숙한 의식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고, 세상이 잠든 시간에만 들리는 냉장고의 낮은 웅웅거림이 고요를 채운다. 이 깊은 밤, 나는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독자를 향해 편지를 쓴다. 마치 광활한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외로운 전파망원경처럼.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6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쓴 에세이를 올렸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조회수는 겨우 3이었다. 그중 두 번은 내가 확인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마 실수로 클릭한 누군가였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노트북을 닫고 싶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바로 그때, 3년 전 회사를 그만두던 날이 떠올랐다. 팀장이 내게 했던 말. "자네는 엔지니어보다는 이야기꾼이 어울려." 그때는 비아냥으로 들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예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완전한 디지털 침묵 속에서도 계속 쓰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 아닐까. 수만 광년을 여행해야 닿는 별빛처럼, 내 글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럼에도 매일 이 자리로 돌아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작된 이 글쓰기 의식은 이제 내 삶의 중심축이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네가 쓴 글은 다 모아두고 있단다. 언젠가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읽을 거야."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첫 번째 독자로 상상하며 글을 쓴다. 때로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동이 트기도 하고, 때로는 쓴 것보다 지운 것이 더 많은 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기 있다는 것,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 불면의 밤을 보내며 인터넷을 헤매다가 우연히 내 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 아니 어쩌면 또 다른 나 자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디지털 바다에 작은 유리병을 날려 보낸다.
단골 카페의 구석 자리가 내 두 번째 작업실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규칙적인 소음과 낯선 이들의 대화가 만드는 백색소음 속에서, 나는 다시 빈 문서와 마주한다. 오늘은 무언가를 꼭 써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화면은 한 시간째 백지상태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타자 소리가 내 침묵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그때 바리스타가 다가와 물었다. "오늘도 글 쓰시나 봐요? 항상 진지하게 화면을 보고 계시던데."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네, 근데 오늘은 영 안 써지네요."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도 일기 쓸 때 그래요. 첫 줄이 제일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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