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변명
"미안해. 그런데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틀렸다. '미안해'는 마침표를 찍는 문장이지, '그런데'라는 접속사를 붙여 생명을 연장하는 문장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사과를 '나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결백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앞의 "미안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도움닫기에 불과하고, 뒤에 나오는 "그런데"가 하고 싶은 말의 본론이 된다. 듣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사과라는 포장지 안에 자기변호라는 썩은 과일이 들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많은 사람이 사과를 힘겨워하는 이유는 사과의 목적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과는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하는 고해성사가 아니다. 상대방에게 발생한 '오류'를 인정하고, 멈춰버린 관계를 다시 작동시키기 위한 실무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만 감정의 영역으로 도망친다. "네가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라는, 이른바 '조건부 사과'가 대표적이다. 이 말은 얼마나 비겁한가.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는 뜻을 내포하며, 갈등의 원인을 나의 실수가 아닌 상대의 예민함으로 돌려버린다.
코드를 짜본 사람은 안다. 오류가 났을 때 중요한 건 작성자의 의도가 아니다. 작동 결과다. 내가 아무리 밤을 새워 완벽한 로직을 짰다고 생각했어도, 화면에 블루스크린이 뜨면 그건 실패한 코드다. 거기다 대고 "내 코드는 완벽한데 컴퓨터가 이상하다"고 우겨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기분이 망가졌고 신뢰가 깨졌다면, 나의 의도가 얼마나 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괏값이 틀렸으니까. (버그 앞에서 의도를 변호하는 개발자는 없다. 있다면 곧 해고된다.)
많은 사과가 실패하는 이유는 이 지점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내 사정을 알아달라고 읍소하고 돌아온다. 이건 사과가 아니라 항소다. 법정에서나 통할 법한 논리를 감정의 영역으로 가져오니, 듣는 사람은 기가 찬다. 사과는 억울함을 해소하는 자리가 아니다. 발생한 오류를 인정하고, 시스템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긴급 복구 작업이다. 이 작업에 불필요한 사족을 달수록 복구는 늦어지고, 데이터 손실은 커진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변명이 하나 있다. 개발자가 버그 리포트를 받고 가장 먼저 내뱉는 말. "제 컴퓨터에서는 잘 돌아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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