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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Jan 05. 2024

1일1식으로 인도한 알고리즘 신!

- 감사하라!

오랫만에 만난 친구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달 전에 다친 상처를 내보이며 푸념을 늘어 놓는다.


"이제 상처가 나도 아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흰머리도 여기저기 나기 시작하고. 너무 피곤해서 어디 일주일 조용한데 가서 잠이나 실컷 자면 좋겠다"


40대 중반은 참 애매한 나이다. 더 이상 젊다고 말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젊다. 하지만 늙어가는것에 서서히 적응해야 하는 나이다. 친구도 나도 늙어가는것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 또래 여자들을 '아줌마들'이라고 부르며 우리 나이와 거리를 두며 마치 스스로는 아줌마가 아닌 것처럼 굴었다. 심리적 나이와 육체적 나이 격차를 좁히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늙음에 무관심한 척 하려 애썼다. 하지만 거울을 볼때마다 늘어지는 피부와 늘어가는 흰머리에 조차도 적응하지 못했고, 실제론 하루하루 체감되는 몸의 변화에 속상했다.

 

더구나 디스크파열. 이석증. 이명. 피부발진. 만성피로 등으로 몸의 기반이 무너짐을 경험한 40대 중반의 나는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내 자신, 내가 믿었던것들, 지향했던 것들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두 질문 사이를 수천번 오갔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무한 반복된 미궁 속에서 출구일지 모르는 여러 문들을 두드려 보았다.


언젠가 열리겠지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지쳐 열리긴할까?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번생은 망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도 잊었다. 급기야 그런게 있었나 싶었다. 그러다가 사는 게 별거인가 다들 그렇지하고 나를 두둔했다, 어느 날은 아무것도 이룬게 없다고 어쩔거냐고 질책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변명과 질책을 오가다
결국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열고 말았다.
공허의 문


오늘의 한끼- 명란밥


오늘의 한끼는 명란밥이다. 중불에 버터를 녹여서 명란을 익혀 건져 놓는다. 명란을 구워낸 버터에 표고 버섯과 마늘을 넣어 볶는다. 맛과 향이 우러났을 때 불린 쌀을 넣고 볶는다. 쌀이 약간 투명해진 상태가 되면 물을 붓고 밥을 한다. 밥이 되는 동안에 쪽파를 좀 많다 싶게 썰어서 다 지어진 밥 위에 소복히 올리고 그 위에 구워 놓은 명란을 올리고 다시 뜸을 5분 정도 들인다. 이 명란밥을 처음 먹었을 때의 맛을 잊지 못한다. 일단 처음 시도해 본 음식이고, 그 맛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내 입맛에 잘 맞는다.


공허의 문을 열어 제치고 우울에 허우적 거릴때 저 명란밥을 먹을 때만큼은 잠시 잠깐 괜찮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마치 무색무취의 공간에서 사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명란밥이 선사한 선명함은 내가 여전히 삶을 잘 살고 싶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기대하지 않은 음식에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맛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잠시 지쳤을뿐이라고, 쉬었다 가면 되는거라고 말해주었다. 삶의 모든 기대를 내려 놓고 살다보면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 음식이라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때면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 무엇보다 조리가 너무도 쉽다. 우울할때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일이니까.


인간이 행복을 느끼기 위한 3요소가 자유, 유능, 관계에 있다고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말한다.  1일1식 직전의 나는 저 3가지가 모두 무너져 내렸던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이 일상의 대부분이었고, 잘해나가도 있었다고 믿었던 일에서도 삐그덕 거리는 일들이 생겼으며, 가까운 가족들과도 적잖은 불화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데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몸에 탈이 나기 시작하니 진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된 듯한 무기력에 빠져 버렸다.


패배자가 된 기분, 인생은 언제나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므로 보란듯이 잘 살아내리라 다짐했던 나는 보기 좋게 k.o 패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침대를 충전기 삼아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전히 누워 터치만 하면 되는 스마트 폰 세상을 정처없이 부유하다 잠들었다. 삶의 키를 놓고 그냥 어떻게든 어디로든 가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닿게 된 구원의 섬.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나는 감각이 매우 예민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잘 파악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게 신은 어떤 형식으로든 감지된 적이 없다. 대신 삶의 구원자는 언제나 '마음 속 안에' 있다고 믿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삶의 구원자는 자기 마음 속에 '선한 안내자'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내게 그게 바로 '신'이야라고 말한다. 그래 그들은 나를, 나는 그들을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럼 그렇다고 치자. 당신들은 신이라고 믿고, 나는 통찰이라 믿기로.


신이든 삶의 통찰이든 삶의 구원은 밑을 칠 때 찾아온다. 잘 살고자하는 간절함은 우리 자신은 언제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언제나 삶에서 의미를 찾고 끝내 살아내자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구원은 거짓말처럼 온다. 내게 그랬던 것 같다.


사실 평소 난 '알고리즘'을 신이라 부른다.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게 알고리즘이 아닐까 생각해서다. 공허의 문을 열어 놓고 갈길 어하는 내게 알고리즘 신은 어떤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아무래도 그 영상이 1일 1식의 시발점이 아니였을까 싶다. 그 영상은 내게 없는, 하지만 내게 필요한 마인드 하나를 알려주었다. 삶을 사는 문제는 결국 이 마인드가 있는지 여부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메세지였다.



감사 일기를 딱 1주일만 써봐라!



왜 저 말에 이끌렸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다. 다만 감사 일기1주일 쓰는 건 별 에너지를 들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의심 많은 걸 알아서인지 알고리즘은 내게 속는 셈치고 딱 일주일만 써보라 했다. 그 노력과 그 시간으로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걸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난 뭔가는 했어야 했으니까. 살아갈거면 어떻게든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으니까. 그냥 속는 셈치고 일주일간 감사일기를 썼다.


월요일

남편이 끓여준 얼갈이 소고기국이 맛있다.

요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계절이라 너무 좋다

아들이 나를 많이 도우려고 애쓰는 게 느껴진다

딸이 힘든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줘서 고맙다


화요일

여름이(반려견)가 늘 내 옆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줘서 좋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는 예술가들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

학생 어머니가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알고 커피 드립팩을 선물해주셨다

나를 믿고 배우러 오는 오래된 학생들이 많다


수요일

유튜브로 좋은 강의들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들이 나 대신 여름이 산책을 시켜주었다

오늘 먹은 카레가 너무 맛있었다


목요일

오늘 기분과 컨디션이 좋아서 감사하다

여름이가 건강해서 감사하다

오늘 날씨가 습하지 않고 선선해서 기운이 빠지지 않아 좋다

아들 영어 선생님에게 늘 감사하다


금요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


토요일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감사하다

감자탕을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성공했다

남편에게 화가났지만 잘 참은 내게 감사하다


일요일

요즘 중등 수업이 수월하게 진행되서 감사하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기쁘다

딸이 꿋꿋하게 시험기간을 보내고 있어서 감사하다



"세상에는 즐거움을 주는 존재들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 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채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복을 항상 즐거운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1년에 불행한 날이 대부분이 될테니..."


매사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야 너무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긴 하지...라고 못마땅하게 수긍하고, 억지로 긍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감사일기를 쓰면서 정말 매사 감사 할일 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것들은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그 위에 하나씩 더해가는 삶만을 상상했기에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에게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느껴 그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거나 자신이 죽을병에 걸리는 큰 불행을 겪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전보다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각의 변화는 한순간에 올 수는 있어도 이 생각이 일상의 변화로 이끌어 몸의 습관이 되게 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나는 몇주간 더 감사일기를 썼다.




그렇게 차차 나는 '일상에 감사'하는 법을 몸으로도 배워가고 있다. 그러자 마음에 에너지가 차올랐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반려견 산책을 좀 더 자주 시켰다. 개아들과의 산책하는 시간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게 웃어주고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가진 좋은 점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들이 내 가족이고, 이웃이고, 친구인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이후 알고리즘 신은 내게 어떤 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다이어트와 건강을 연구하는 젊은 친구였는데, 그는 젊지만 나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알고리즘 신은 의심 많은 내게 다른 뇌학과자나 여러 의사들도 소개해주어 그 젊은 친구가 하는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빛과 말투가 진실되어 보였다.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일에 자신의 청춘을 받치고 있는 그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를 만난 우연에 감사했다.


스스로를 다이어트 과학자라고 소개하는 젊은 청년 '최겸'은 비만을 '대사질환'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그리고 그 대사질환의 원인은 문제되는 음식을 쉬지 않고 자주, 많이 먹고 있는 식생활 습관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사질환을 해결할 방법으로 먹지 말아야할 것들을 먹지 않는 식생활 습관 개선과 간헐적 단식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는 간헐적 단식을 24시간 이상 단식이라 정의하면서 시중에 알려진 5대2나 16대8은 '시간제한 식사'지 엄밀히 말하면 단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식의 유용함에 대해 여러 근거를 가지고 설명해주고, 할 수 있으면 24시간 -72시간 이상 단식을 자신의 몸 상태나 단계에 따라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초보자가 섣불리 접근하다 실패를 할 것을 고려해 1년 동안 단계별로 단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상도 만들어 놓았다.

한번에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지 말것
모든 단계를 천천히 거칠 것
본질은 일시적 감량이 아니라 건강해지는 것


무엇보다 그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 엄청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 실천하지 못했다고 포기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내일 다시 하면 된다고 응원해주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성공하기 쉽다고 독려하는 그에게서 강한 신뢰를 느꼈다.


이 사람 '진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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