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가와 나누는 지적인 대화

by 책선생

매년 나는 중학생들과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센델' 교수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미국의 하버드대 교수를 어떻게? 당연히 책으로. 하버드에서 정치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강의는 아이들에게 깊은 철학적 사유를 선사한다. 학교 도덕 시간에 피상적으로 배우는 너무도 뻔한 '정의'를 '돈보다 중요한 가치'에 대해 아이들은 그와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개념들을 새롭게 정립한다.


'무엇이 올바르고 공정한 것인가?' 처음 이 질문에 아이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그런 따분한 질문엔 관심 없다는 반응이다. 곧이어 마이클 센델 교수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는 희생해도 괜찮나?'' 만약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이내 지루한 표정을 걷어내고 진지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수업을 할 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무엇도 거래가 가능할까?라고 물었다. 어떤 아이들은 가능하다고 했고, 제법 사회에 관심이 있던 아이들은 한창 마약 사건이 터진 때라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거래할 수는 있지만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라고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생명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대답했다. 예를 들어보라고 했더니, 신체 장기나 사람 자체를 사고파는 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동물은 사고팔아도 되냐고 물었다. 이내 긴 침묵이 이어졌다. 동물도 생명이니 사고파는 건 안된다고 해야 하는데, 당장 자신이 다른 생명의 육체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죄책감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더불어 현실 세계에서 동물은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의 대상이니까 순간 아이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이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제와 동물원 운영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육식을 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업을 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다. 딱히 정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정답을 섣불리 주는 것이 더 위험하다. 대체로 현실세계의 문제는 100:0의 문제가 아니라, 49:51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이런 대화를 나누고 우리 주변에 당연하다고 여기던 현상들에 대해 환기시켜 보고 고민하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이 되어야 어른이 되어서 주변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박탈당한 채 '좋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어릴 적부터 학교, 학원, 집만을 오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삶이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놀면서 알 수 있는 많은 종류의 '배움'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아이들의 사고를 확장하고 넓은 시야를 기르기 위해 가끔 '골치가 아픈' 주제와 책을 골라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산드라 클라우트바슐가 쓴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으며 단순히 에코백과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해서 플라스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생활 속의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보다는 '싸고 가볍고 튼튼한' 신의 물질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플라스틱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저자는 용감하게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고 '플라스틱 없이 사는 삶'을 실험하기를 선언한다. 최대한 쓰지 않기로, 최대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로. 그래서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최소한의 자연에 부담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실험을 기록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어떤 구조와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차차 실제 경험으로 알게 되겠지만 그 경험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고 살아가기 쉽다. 플라스틱 사용이 지구 환경을 망친다고 배웠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해 보라 하면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또한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에코백 사용과 텀블러 이야기만 한다. 하나같이 똑같이 모두.....


아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끝없이 배운다. 동생에게 양보해라. 형과 사이좋게 지내라. 남을 배려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차별은 나쁜 것이다, 생명은 소중하다, 우리 각자는 모두 소중한 존재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 등 객관식 시험에 나오는 이런 올바른 문장을 고르지 못할 아이는 없다. 그래서 스스로도 올바름이 뭔지, 공정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정작 '왜 다수의 행복이 소수의 행복보다 중요한가' '1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계절마다 바꾸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되나' '거짓말은 왜 하면 안 되나' '차이와 차별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생명은 여타의 다른 동물의 생명보다 소중한가' '왜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구분되나' 더 나아가 '남녀는 동등하다면서 왜 우리나라는 남자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가'라고 물으면 같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얘기로 들리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이클 센델 교수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 방식에 호기심을 갖고 비로소 교수의 강의를 경청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교수의 명강의를 듣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머나먼 미국에 가지 않고도 책을 펼치면 그곳이 바로 하버드 대학의 강의실이 되며, 우리 앞에는 마이클 센델 교수가 온화한 미소로 이런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주는 것은 올바른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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