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나는 12세기 영국 셔우드 숲에 살고 있는 나의 절친 로빈후드를 만나고 온다. 유쾌한 그를 만나고 오는 길에는 19세기말 영국 런던에 사는 까칠한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마차 한대를 세워 셜록홈스가 살고 있는 베이커가로 가서 그를 만나는 설렘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여느 때처럼 그는 사건 의뢰인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사건 의뢰인은 경찰이었다.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이번에도 홈즈가 대신 해결해 주려는 모양이다. 나는 그가 내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옆에서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에 한참을 귀 기울여 듣고 조용히 돌아왔다. 자칫 아는 척했다가 내가 요즘 책이나 글을 멀리하고 넷플릭스에 빠져있다는 것을 순식간에 간파당해 민망한 꼴을 당하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20세기 초 독일에 가서 아홉 살 소년을 만나고 왔다. 그 소년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베를린을 떠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다. 이사한 곳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우울했던 소년은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고, 모두가 똑같은 줄무의 파자마를 입고 남녀노소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소년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 그저 예전에 살던 아름다운 집, 친구들이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그 소년에게 너무나도 안타깝게 끝내 베를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발길을 돌려 같은 20세기 초 조선으로 갔다. 거기에서도 비행사가 꿈인 열여섯 살의 조안을 만났다. 조안은 어느 날 우연히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하여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비행사의 모습을 보고는 비행사가 되기를 꿈꾼다. 어려운 형편에다 식민지 조선인을 왜놈들이 비행사를 시켜줄 리 없다는 아버지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안은 비행학교에 오게 온다. 역시나 조안은 출중한 실력에도 비행사가 되지 못하고 정비병으로 일하게 된다. 그렇게 그냥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나보다 체념하고 있던 그때 조안은 천황의 은혜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조안에게 그 비행기를 타선 안된다고 그냥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지 카미카제가 특공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팠다.
요즘은 타임머신을 타고 일본의 에도시대(1600대 초반-1800대 중반)를 자주 간다. 한때는 대요괴였으나 모든 요력을 상실하고 눈먼 맹인 안마사로 살아가는 센야와 얼떨결에 요괴 아이 돌보미가 된 야스케를 만나러 가는 이 시간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나 역시 매번 가는 길인데도 새롭고 신기하다. 에도시대의 일본뿐 아니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어느 한편에 요괴들이 사는 상상의 공간을 탐험하는 것은 아이들과 내가 갈 수 있는 최고의 상상 놀이동산이다.
책은 어느 시대든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다.
때때로 안타까운 인물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이면 돌아와서도 그 시간 속에 머문 듯 여운이 길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에 가보고,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돌아오는 일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아! 사람이 아닌 존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근사함 중 하나다. 요즘 가장 핫한 a.i들을 만나곤 할 때면 어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지닌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존재로서 a.i가 현실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될 날이 머지않았을 것 같다.
타임머신을 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원하는 타임머신을 상상하고, 그것이 집에 없다면 도서관에 가보자. 그곳은 타임머신 백화점으로 가장 오래된 타임머신부터 최신식 타임머신까지 상상하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단, 인기 있는 타임머신은 좀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으니 그럴 때는 서점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스트레스를 날릴 치킨과 맥주도 좋지만 가끔은 그 값으로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니 치킨과 맥주까지 사서 타임머신을 탄다면야~
지나가버린 과거, 볼 수 없는 현재,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경험하고 싶다면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