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18년 전 첫 발령을 받아 4년간 근무했던 첫 학교다.
첫 해는 영어전담교사로, 두 번째 해부터 6학년을 연달아 맡으면서 1,2,3호 제자들과 생활했던 학교다. 이후 학교를 이동해 여러 학년을 맡았지만 당시 선배 선생님의 조언처럼 초등학교 하면 나를 떠올려주는 아이들은 대부분 6학년 아이들이다. 사춘기의 혼돈, 녹록치 않은 생활지도와 비교적 어려운 수업 난이도 등 6학년의 힘듦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지만 초등시절 대표선생님(?)으로 남아 나를 떠올려줄 제자들이 생긴다는 면에서 나에게는 6학년이 매력적이다. 그 많은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최근 참여한 <어쩌다 군대> 북토크에서 남기숙 작가님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을 두고 ‘씨앗을 뿌린다’고 표현했다. 첫 발령지인 학교에 돌아와 다시 근무하면서 그 때 내가 뿌렸던 씨앗들이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 있다.
좌충우돌했던, 미숙했지만 그 어느때 보다 열정 가득했던 초임시절 내가 뿌렸던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느낌이다.
학교에 새로 오는 선생님 명단을 보고 연락을 준 현석이, 연수를 간 학교에서 교사로 만난 예서, 스승의 날에 문득 생각이 났다며 카톡을 준 호준, 올해 졸업한 파랑이의 졸업사진을 인스타에서 보고 연락을 준 수연이와 광수, 세현이, 새학기에 6학년 그 때의 기억들이 생각난다며 연락을 준 은영이까지 우연처럼 기적처럼 연락이 닿았다.
혹시 학교가 아이들과 나와의 추억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든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던 그 공간, 그 복도와 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가끔 그리워하는 그 시절의 나를 알아차리고 학교의 정령이 아이들의 기억 속으로 찾아가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니 새삼 대견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안정되어있지도 않고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던 시기였다. 가끔 아이들을 생각하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고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숙한 나를 받아들였고 나의 진심을 봐주었던 것 같다.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실수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그래도 우리를 사랑해서 그런걸거야...하고 넘기고 좋은 기억들만 간직해준 제자들이 그 시절의 나보다 훨씬 마음이 넓고 그릇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15년만에 돌아온 학교에 나를 맞아주는 그시절 제자들이 있는 나는 진정 마음이 부자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지금의 제자들은 10년 후에 나를 어떻게 떠올려줄까? 마음의 씨앗 속에 한 줌의 햇살같은 기억을 담고 힘든 풍파를 견디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마음에 한 줌의 반짝이는 기억을 심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