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태도에 관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맥베스를 202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좋아하는 선배님과 함께 연극으로 관람했다.
그것도 뮤지컬 스타 류정한 배우의 맥베스로! 2023년의 겨울은 맥베스와 함께 마무리된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류정한의 마지막 대사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 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 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라는 독백이 너무 각인되어 아직도 생생하다.
인생의 허무를 이런 멋진 대사로 표현하다니...
고전을 소재로 한 연극은 책처럼 오래 깊이 각인된다.
살면서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이 나에게 연극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한 작품이다. 그 연극의 느낌을 다시 되새기고 싶어 책을 펼쳐 들었는데... 시처럼 강렬한 대사는 또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셰익스피어가 왜 대문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간결한 대사 속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그의 희곡은 천천히 낭독하면 마음속에 더 깊숙이 박힌다.
맥베스는 전쟁에서 영웅이 되고 왕의 총애를 받아 스코틀랜드의 영주의 권한을 얻는다. 그런 맥베스를 축하하고자 왕이 맥베스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에게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될 것을 부추긴다. 맥베스는 부인의 부추김, 마녀들의 예언에 영향을 받고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덩컨왕을 살해하고 왕이 된다.
그가 이런 선택 속에서 고뇌할 때 악을 선택하도록 돕는 마녀들이 등장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이해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마음속에서 착한 천사와 못된 마녀의 마음이 공존할 때가 있다. 맥베스가 악을 선택하도록 주위에서 자꾸 채찍질을 한다. 맥베스의 부인은 맥베스가 던컨왕을 죽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알리바이까지 꾸민다. 부인의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맥베스...
권력이란 것이 그렇게 취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 권력을 가진 적이 없어 왜 그렇게 못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권력을 가지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왕이란 권력을 정당한 절차를 통하지 않고 그렇게 피를 불러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맥베스의 어리석음에 놀라고 혀를 차게 되지만... 한 번 작은 권력을 맛보면 더 큰 권력을 희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아래에서 나를 받들어주는 것에 인간이기에 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건 고웁고 고운건 더럽다!"
이 책의 가장 강렬한 한 문장이다.
더러운 것이 고울 수가 있나? 또 고운 건 더럽다니,... 이 무슨 말인가...
다 읽고 나서 이 문장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너무 궁금했다.
내 개인적인 해석은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항상 더럽기만 하고 항상 곱기만 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아기처럼 순수하고 고운 마음을 가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악마처럼 더럽고 악한 마음을 품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절대선한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고 절대 악하기만 한 인간은 없다. 또한 인간은 욕망하는 한 방황한다.
그 방황이 맥베스의 대사나 독백 속에서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을 선택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 맥베스....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라는 대전제가 이루어져서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맥베스가 참 안되었다는 연민 또한 느껴졌다.
아마 희곡의 대사 속에서 나름 선을 택하고 싶어 하고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의 흔적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이 아쉽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한 듯... 못된 욕망이 선을 이긴 것이다.
그의 모습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또한 보게 된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맥베스처럼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가지고 싶은 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탐욕이고 악이라고 생각한다.
맥베스의 욕망은 악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헛된 또는 못된 욕망인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나의 질문이었다.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정리가 되었다.
욕망을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p49
"지금의 일상에 만족하는 건 아니에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고 그래서 일은 지루하고 하루하루 지쳐가요. 하지만 몸은 건강하고 나름대로 다정한 애인과 좋은 친구들도 있으니 이만하면 전 충분히 행복한 거겠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만한 행복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제가 문제겠죠?"
중략...
일이나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보거나 지루한 하루하루를 바꾸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려는 의지도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행복이 아니냐고 합리화하려 한다. 동시에 욕망을 품으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한다. 욕망을 위해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은 탐욕이지만 정당한 노력을 실천하고 위험요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발전해 나가려는 것은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 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욕망의 이름으로 부정당하고 행복의 이름으로 납득되는 것일까
-여기까지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꿈도 컸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어느 날 말씀하셨다. 무슨 하고 싶은 게 그렇게 많고 눈이 높냐고 나는 네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평범하게 만족하고 살았으면 좋겠고 네가 얼른 돈 벌어서 집안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치 나는 더 이상 욕망하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그럼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매일같이 하숙집으로 전화를 걸어 당장 하던 공부 포기하라시며 공무원시험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결국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나는 반항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런 엄마의 요구에 부응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욕심이 많다고 핀잔을 주던 어머니...
왜 나는 그런 욕심을 가지는 것이 안되었던 것일까?
왜 나는 청춘인데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내가 욕망하는 것들은 왜 욕망하면 안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너무 컸었고...
엄마에 대한 못내 서운한 마음은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읽으면서 "부모도 그 부모에게 상처받은 영혼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후 스며드는 충격으로 어머니를 용서하기로... 했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그 표현은 나의 할머니로부터 비롯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엄마도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그런 사고의 전환은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게 했다.
아마 농경사회에 태어난 엄마 시대에 자식이란 노동력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던 듯하다. 엄마는 가끔 하시는 말씀 속에서 "누구 자식은 부모에게 뭘 해줬다더라"는 식의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것이 아마 농경사회의 문화인 효도하는 문화를 당연시 여기시는 분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8남매의 다섯째인 엄마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동생을 위해 양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생을 돌보고 어려서부터 바쁜 할머니를 도와 밥을 하고 밭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으로 삶이 힘들었던 엄마... 그런 할머니를 미워하면서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엄마였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나도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만 다녀도 엄마눈에는 좋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성인이 되어서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자녀가 예전 농경사회 문화에 익숙한 엄마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부담이었을 수 있겠다 싶다. 자식이 부모에게 성인이 되어서도 뒷바라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는 아니니까 말이다.
세대가 달라지고 요즘 자녀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뒷받침되고 허용되는 시대이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듯이 혹시나 자녀가 현실과 멀어져 집안에 틀어박혀 사회부적응자가 될까 오히려 걱정하며 자녀들이 꿈을 천천히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뒷받침해 주는 부모가 많은 시대이다.
내가 엄마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욕망...
너무나 하고 싶은 욕망을 알기에 나는 내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욕망이란 것은 헛된 꿈으로 부정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이고
그 나이에만 꿈꿀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 나이에는 욕망하는 게 당연하니 마음껏 욕망하라고! 그래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