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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an 09. 2024

‘지구 구하기’ 나의 작은 날갯짓

에세이

이번에 ‘장르 문학잡지’ 월간에세이 2024.1월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문에 ‘탄소중립’, ‘온실가스 배출‘, ‘친환경’, ‘녹색생활 실천’ 등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코웃음부터 쳤던 나다. 먼 달나라 이야기 같고, 내가 페트병 하나 버린다고 이 거대한 지구에 티도 안 날 것 같고, 페트병 하나 더 줍는다고 지구환경에 그리 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일단 구호자체가 거대하다. ‘지구 구하기’, ‘녹색생활’, ‘탄소중립’ 등의 단어가 너무 거리감이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용어가 아니다. 이런 거대 담론, 이런 운동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는 정신세계가 완전 다른 별세계 사람일 거야 ‘라는 생각도 들고, ’ 그들은 아마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일 테고, 가족들은 두루 편안할 거고, 다른 걱정거리도 별로 없는 사람들일 거야. 그러니 남는 시간과 여유로 사회, 국가, 인류를 향한 담대한 뜻을 품었을 거야’라는 생각이다. 


좀 더 현실적을 접근해 봐도 그런 큰일, 대승적인 일들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 대통령이나 무슨 특사가 할 일쯤으로 보인다. 좀 작게 잡아도 국회의원, 장관, 사회 운동가쯤은 되어야 이런 이야기가 무리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나처럼 한 몸 추스르기 벅차고, 가족 챙기기도 바쁜 일개 시민이 그런 거대담론을 다루다니 한마디로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에서 말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쓰레기통 비우러 쓰레기 집하장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플라스틱, 비닐, 깡통, 유리병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난장판이었다. 아마도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미처 정리를 못한 것 같았다. 종류별로 분리수거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누군가가 이런 질서를 흩뜨린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럴까? 교양이 없나? 1분만 신경 쓰면 될 일인데, 자기 혼자 편하자고 이렇게 버리다니…. “ 탄식하고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져온 쓰레기를 조용히 두고 돌아섰다. 그런데 뒤가 좀 켕겨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해 둔 사람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나도 내 쓰레기를 보태고 그냥 돌아서 오다니, 미필적 고의 아닌가? 나도 그들과 다를 게 뭐 있나?


분리수거가 안 된 근본 원인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부터 작심하고 고의로 지저분하게 할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들이 정리하지 않으니 덩달아 어쩔 수 없이 그리 했을 것이다. 아니면, 어느 통에 어떻게 정리할 바를 잘 몰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라벨을 붙여보면 어떨까?’ 지금은 아무 표시 없는 통마다 각각 라벨이라도 붙여 놓으면 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로 문방구 가서 프린트하고 빗물에 떨어져 나갈 것을 염려해 코팅도 했다. 이를 지켜본 아내가 하는 말 ‘반장이 알아서 할 일인데, 오지랖’이란다. 그래! 오지랖이라도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분리수거만 된다면, 큰 노력 드는 일도 아닌데 오지랖이 대수냐 싶었다. 우리 빌라 모든 사람이 이게 원인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이런 지저분하고 짜증 나는 상태를 견뎌야 할 것이다. 


라벨을 붙이고 난 뒤 나는 쓰레기장을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결과가 궁금해서다. 하루 뒤, 나비효과인가? 나의 작은 날갯짓이 통한 걸까? 쓰레기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주민들이 라벨 써진 대로 분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부분에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작은 동기에도 크게 움직이는 것 같다. 우연히 마음먹은 라벨 붙이기라는 작은 동작 하나로 ‘녹색생활 실천’이라는 거대 담론에 동참했다. 커다란 빌딩 모퉁이에 작은 스티커 하나 붙이고 묻어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왠지 '지구 구하기' 일원이 된 거 같아 스스로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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