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가비의 아침은 분주하다. 6시 침대에서 다리 돌리기를 시작으로 그의 오전 루틴이 작동한다. 하늘 정원의 나무에 물을 주고 집 주변 청소도 한다. 빨래를 널 때도 규칙이 있고 집 앞에 눈을 치울 때도 빗질의 가로 세로가 의미가 있다. 용가비는 사회전반 아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간섭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차가 다니는 1.5차선 도로에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한참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계신다. 용가비는 할머니를 업고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렸다. 취약계층의 외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점심 식사 시간 그는 대한민국의 사회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한다.
나의 아침은 평화롭다.
오전 9시 뜨거운 물 반 차가운 물 반으로 차를 만든다. 용가비가 사포질을 열 번도 넘게 하고 콩기름을 바르고, 말리고, 닦아내고를 또 열 번, 그렇게 만든 큰 테이블 위에 찻잔을 놓고,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의자에 앉았다. 층고가 4M가량, 커다란 ㄱ자 통창 앞, 용가비가 만들어준 테이블이 놓여 있는 공간을 나는 좋아한다. 통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조용한 아침이다.
나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관망하는 것이 편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바쁘다. 내가 하는 일 때문인가? 나의 성격 때문인가? 내가 하는 비행 업무는 규정이 명확하다. 하지만 매번 낯선 상황,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예측 불가능 하다. 눈, 비, 바람등과 같은 자연 현상은 또 다른 변수다. 매번 다른 새로운 것들이 매력적이어서 20년 넘게 지속가능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관심은 좋아한다. 낯선 사람도 낯선 문화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용가비를 만나고 나는 박물관보다는 갤러리를 더 많이 간다. 그리고 패션, 뷰티 분야 보다 인테리어, 건축, 미술 분야에 좀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인문학적 깊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참치 액젓'에서 비롯되었다. 새벽 배송으로 받은 식재료들을 넣으려고 김치 냉장고를 열었는데 빈 공간이 없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정리를 하던 중 개봉을 해서 사용한 흔적이 있는 '참치액젓'이 3개나 나왔다.
나는 용가비한테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지 고민했다. 카톡으로 '참치 액젓' 사진을 찍어 보내기로 하고 이렇게 하지 말라고 조심해 달라고 했는데 이거 뭐야 라는 문장 끝에 느낌표를 할지, 물음표를 할지, 몇 개나 할지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용가비는 몇 주 전부터 어렵게 잡은 그날 저녁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고 열명 가까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약속 취소를 공표했다. 그리고 개인 카톡으로 유튜브 김창옥 세바시 강연 릴스를 공유했다.
출처: 세바시(김창옥)
사랑받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은
"말을 되게 이쁘게 하시더라고요."
"배우자에게 혼나면 수명이 줄고 가난해진다."
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호소하고 말 좀 살살하자는 건데 왜 모가 잘못이야.
어쩌면 좋을지 당최 모르겠네.
넌 너무 극단적이쟎아.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게 내 절박한 부탁이야.
네가 말해줘.
늘 눈치 봐야 하고 불안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네."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카톡으로 서로를 할퀴기 시작했다.
용가비는 탐미주의자다. 용가비는 습관적으로 끝까지 다 못 먹는 재주가 있다. 새로운 초콜릿이나 치즈를 뜯으면 한 번에 다 먹는 법이 없다. 용가비는 끝까지 먹지 않는다. 잔소리하기를 여러 번 한동안 식품류는 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참치 액젓' 또 시작이다. 도무지 사용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아직 '참치 액젓'과 관련된 사용 설명서는 정리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걸까? 그냥 다른 것인가?
나는 물건을 쟁여두기는 하지만 있는 물건을 다 쓰기도 전에 다음 것을 개봉하지 않는다. 개봉한 물건은 알뜰살뜰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사용한다. 그리고 최초 개봉 날짜를 물건 겉면에 적어 놓는다. 식품은 물론 주방 용품, 화장실 용품, 화장품도 마찬가지이다.
용가비의 전용 아이템들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신혼 초에는 잔소리도 하고 청소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흐린 눈으로 보기로 했다. 우리 둘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절충점, 합이점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의견을 나누었지만 서로 편한 것 만을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지만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의 간극을 좁혀 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아직도 갈등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다투고 나서 화해하는 새로운 방법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일종의 용가비 사용 설명서 같은 것을 글 쓰는 사람인 나는 글로 정리해보고 있다.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나의 사용방법을 정리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