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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탐방 프로젝트] 공연기획자편

공연의 A to Z를 담당하는 이를 찾아서



자기만의 숲을 찾아가는 이야기, 숲탐방 프로젝트

- 공연기획자편 - 




본 편은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은 삭제하거나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인터뷰이를 지칭하는 '그'는 삼인칭 대명사로서 특정한 성별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공연예술을 종합예술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공연기획자는 그 누구보다 다원적인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공연을 바라보고, 그것을 진행시키고, 관리하는 과정은, '예술'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만한 어떤 것이다. 우리 공연계 현실에서 공연기획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전반적인 일을 다 맡는다'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실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5년차 공연기획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늦어도 1년 전, 빠르면 2~3년 전에 공연 라인업들은 다 나와요. 그러니까 그 전부터 어떤 작품을 할지 논의를 해야겠죠. 월별로 소싱(Sourcing)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국내외 작품 서치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일단 작품이 결정되면 대본 작업이 진행되고, 대본이 어느 정도 나오면 다른 파트의 창작진이 붙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특히 라이센스 작품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2~3년 전부터 해외와 소통이 시작되죠. 크리에이티브팀이 마련되고 배우 캐스팅이 끝나면 연습이 시작돼요. 홍보물도 나가고 티켓도 오픈되면 공연이 올라갑니다. 공연이 끝나도 기획자는 끝난 게 아니에요. 정산을 하고, 이 공연을 다음에도 이어갈 수 있을지 판단을 하게 되죠."


물론 이 수많은 단계 중 어느 하나가 어그러져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공연도 부지기수다. 한국에서 공연 콘텐츠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내수 시장은 작기만 하고, 그래서 기획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선 더 많은 변수를 촘촘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사실 일반적인 직업은 아니죠. 공연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 공연 분야는 이 영역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면 견뎌내기 힘들 것 같아요. 공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무수하게 많은, 힘든 순간들을 버티게 해주거든요. 일이야 배우면 되고, 하다보면 경험치는 자연스럽게 느는 건데,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준비과정부터 결실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공연기획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생각해요."
"원래는 콘서트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연극이나 뮤지컬 쪽으로 연이 더 잘 닿았어요. 물론 이전부터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긴 했죠. 그냥 관객으로 남지 않고, 서포터즈를 활동을 할 정도로요. 공연기획과 제작을 하는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이후 색깔이 다른 회사들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죠. 회사마다 구조도 달라서 하는 일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어요. 기획과 제작, 마케팅, 운영 등의 경계가 공연 분야에서는 원래 모호하기도 하고, 한국에선 아직 체계화가 덜 된 부분들도 있거든요."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관객으로 남았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길로 나아갔다. 어느덧 5년차가 되었지만, 열정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공연이 주는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일상에선 없는 일들이 공연장에선 실제로 일어나요. 그런 현실과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들이 공연의 매력 아닐까요. 한두 시간 동안 일상에서부터 조금은 멀어져서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온전하게 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잖아요.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생각을 더 해볼 수도 있게 해주죠. 아, 공연이 1회성 콘텐츠인 것도 정말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단 한 번의 라이브. 그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죠."


이 세상 어떤 일이 안 그렇겠냐만은, 공연 분야의 일도 언뜻 보기에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 과정을 총괄하는 공연기획자로서 힘든 일은 손으로 다 셀 수도 없을 터다. 에너지를 분배하는 법을 기르고 힘든 일에 대처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그래도 힘든 일은 여전히 힘든 법이다.


"힘든 일은 정말로 많죠. 뒤에서는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비춰지는 일들이 많거든요. 특히 모니터링을 진행할 때는 정말 인간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내가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물론 관객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만, 실무자로서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공연기획자들은 평일에도 주말에도 늘 긴장되어 있는 상태로 살아요. 주말엔 예매처 전화로 잠을 깰 때도 많죠. 제가 쉬는 날에도 공연은 계속 되고 있으니까요. 공연이 시작되고 난 후에야 마음이 조금 놓여요. 물론 저녁 공연 시간이 다가오면 또 긴장감이 올라오긴 하지만요."


그럼에도 그는 공연이 좋다. 현장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긴 휴식을 가지고 재충전을 한 후, 다시 돌아온 곳은 또 공연장이었다. 엄청난 부를 확보할 수도 없고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도 아니었지만, 예술의 힘을 느끼는 그 현장감이 좋았다. 특별한 직업인 것만 같았다.


"언젠가 해외에 공연 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 콘텐츠를 가지고 아부다비에서 아동극 공연을 하게 되었거든요. 한국어 대사라 사실 디테일한 내용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도, 아부다비 아이들이 정말 공연을 재미있게 보는 거예요.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서도 공연의 가치가 전달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훈훈해졌죠. 경계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하나될 수 있게 하는 공연의 힘을 느낀 것 같아, 정말 값졌던 경험이었어요."


한국 공연 콘텐츠는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연 콘텐츠를 수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잠시 성장을 막긴 했지만, 아직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연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들을 막 시도해보려고 할 때, 코로나19가 터져서 그 성장이 멈춰버린 것이 좀 안타까워요. 새로운 것은커녕 기존에 하던 것도 못하게 된 판국이니까요. 그래도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기대감에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다 비슷한 마음들일 거예요. 여기서 멈추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공연을 올리려고 다들 노력하고 있거든요. 어떻게든 이 현장을 살려보자는, 지켜보자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좀 생겼어요. 이 시기만 잘 지나면 좋겠어요."


사명감이 생겼다는 말에 울림이 느껴졌다. 코로나19 시기에도 공연인들은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을 외치며 공연을 이어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말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가 한국의 공연 시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대,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이 현장에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였다.


"젊은 공연기획자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시선들이 들어와야 또 이전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도 해보죠. 지금도 여러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떤 분야든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이 신선한 바람을 만들어갈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당신의 숲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공연이요. 숲을 '쉴 수 있고 영감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공연이 제 숲의 주된 구성요소라는 걸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 공연에 대한 열정,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욕심 같은 것들이 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일이 힘들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그럴 땐 또 다른 공연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어요. 그 공연을 보며 감탄했던 것이 또 원동력이 되어서 제가 만드는 공연을 더 열심히 만들 수 있게 하죠. 그렇게 매 순간 배워가면서 공연을 만들고, 공연이 잘 올라가면 정말정말 기뻐요. 그러니까, 제가 만든 공연이든, 그렇지 않은 공연이든, 어쨌든 저의 숲에는 공연이 가득한 것 같아요."


참신한 답변이 아니라며 그는 쑥쓰러워했다. 하지만 그 답변에선 공연을 향한 그의 진심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공연 생각으로 가득한 그에게 좋은 공연이란 어떤 것일까. 그가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 같은 사람이 오늘도 이 공연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을테니.


"오래오래 생각이 나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한번 웃더라도 단순히 웃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뭔가 생각해보게 하는 공연 있잖아요. 공연장에선 짧은 시간 머물더라도, 더 긴 여운이 남는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공연'이라고 주위에 알려주려 하고, 다시 올라온다고 하면 또 보고 싶어하는, 그런 '좋은 공연'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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