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코를 좋아하세요?
외로운 취향이라는 게 있다. 그렇게 마이너 하지는 않는데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통 취미.
예를 들면 건포도다. 나는 건포도를 좋아한다. 주변에서 건포도를 좋아하는 사람 아직 한 명도 못 만났다. 하지만 건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에는 있을 거다. 계속 나오는 걸 보면.
그래도 건포도는 인지도가 있어서 그게 뭐냐?라고 되묻지 않지만 마크로스코를 설명하려면 일단 구글부터 열어야 한다. 그리고 막상 보여주면 호들갑이라는 반응이다. 마크로스코를 주변에 더 알렸어야 했나.
마크로스코가 미술사에 꽤 대단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과 그곳에는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막상 보면 이게 잘 그린 그림이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그의 스토리를 알게 된다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로스코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그림을 보고 울어본 건 처음이었어요.”
울게 하는 그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너무 신기하잖아.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로스코채플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생긴 계획은 우리가 동부에서 서부로 가니까 중간에 중부 휴스턴을 들리기로 했다.
나는 로스코를 설명하려고 동생들에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히 실패했다. 설명은 실패했지만 막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휴스턴행에 동의하며 네네까지 설득해 줬다.
“지금 같이 안 가주면 나중에 또 같이 가줘야 돼.”
그래서 가게 된 1박 2일 휴스턴 여행. 오로지 로스코만을 위한 여정이라 우리는 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로스코를 만나러 갔다. 낙엽을 밟으며 간 로스코채플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었다.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건물에 로스코 그림이 14점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로만 들었던 곳에 드디어 들어간다. 검고 무거운 문을 열면 방명록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고 채플로 들어가기 전 직원이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 준다. 여기는 대화와 핸드폰이 불가한 완벽한 감상 조건을 갖춘 장소다.
사람들은 로스코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면 유난이라고도 한다. 도대체 쓱쓱 칠한 것 같은 그림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한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로스코를 알게 된 건 미술치료 수업시간이었는데 교수님의 그 설명에서 보이는 로스코에 대한 표현이 너무 숭고해 보여서 나도 좋아하게 됐다.
지난주에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도 봤지만 로스코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그가 원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볼 때 나는 고개를 올려 하염없이 그의 색을 바라봤다. 보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저릿한 마음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곳엔 조용하지만 센 울음이 있었다.
작품 감상의 몫은 오롯이 감상자에게 있다면 내가 만난 로스코는 로스코리라.
나에게는 가장 기대를 많이 했고 가장 가고 싶었으며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곳이었기에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인 검은 방석이 있는 채플이었다. 동그랗고 폭신한 방석에 앉아 바로 앞에서 로스코의 그림을 조용히 보는 경험이라니. 목적이 단순하고 이기적인 만큼 원한 바는 다 이룬 곳이다. 억지스럽게 내가 로스코 그림을 보며 그의 슬픔을 캐낸 건 아닐까 지나친 해석은 아닌가. 같이 온 사람들 아무도 못 느끼는데 뭔가 깨달은 척하는 게 아닐지 채플 다녀온 후 한동안 생각했다. 같은 계절이 다시 돌아올 만큼 시간이 지나자 그날의 감상에 확신이 생긴다. 그림에 관해서는 그래도 된다. 내가 느낀 대로 말해도 괜찮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까지 정답이 정해졌다면 나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만큼은 답 없는 자유로움이 허용되는 세상이 좋다.
추신
1. 로스코 그림에 별은 없습니다. 저의 상상도입니다. (사진 촬영이 불가해서 그림으로 대체합니다.)
2. 저에게는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3. 로스코 좋아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