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천재 메닐부부의 소장품이 있는 곳
명상하기 좋은 로스코채플 옆에 공원을 지나면 바로 옆 블록에 걷기 좋은 메닐컬렉션이 있다. 로스코채플을 건축을 후원한 드 메닐 부부의 평생 모은 17,000점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로스코채플은 주택가에 있어도 남다르게 생겼지만 메닐컬렉션은 얼핏 보면 어딘지 모를 수도 있을 정도다. 뉴욕에서 다녀온 휘트니뮤지엄을 건축한 렌조피아노의 건축물인데 원래 혁신적인 건축물로 유명하지만 초기작에 속하는 메닐컬렉션은 일부러 주변 집과 어우러지게 지었다고 한다. ‘예술이 일상이 되도록’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이곳은 가장 포용력 있는 사설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주변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전혀 으스대지 않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바닥에 하얀 벽으로 된 공간이 나온다. 텍사스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통창으로 되어있다. 텍사스 날씨 때문일까 따듯한 인상을 주는 내부에서 그림을 하나 둘 본다. 막내는 로스코 채플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했지만 메닐컬렉션에 와서는 구석구석 보고 있다. 예술감상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사진촬영이 불가한 메닐컬렉션에 대해 이제와 생각하니 커다란 느낌만 남았다. 소장품을 보면 소박할 수가 없는데 소박한 분위기가 있다. 소박한데 정갈하다. 주변 부동산이 폭등하지 않도록 주변도 미리 다 매입해 임대한다고 하는데 주변 분위기가 메닐 풍으로 정돈되어 있다. 내가 가 본 중에 이런 지역은 처음이었다. 걷기가 너무 좋은 동네로 만들었다. 유니버설에 할리우드 세트장 같은 드라마적인 곳이다.
그리고 더 드라마틱한 점은 여기 주변 어디를 가도 메닐이 닿아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 휴스턴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바로 온 곳이라 휴스턴의 첫인상은 더 따듯했다. -실제로 휴스턴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과 식당이 전부라 모두 친절했다.-
메닐컬렉션은 어느 수집가의 집에서 예술품을 보는 느낌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미국드라마에서 본 병원 복도 같은 생각이 더 들긴 했다. 로스코채플의 보랏빛 분위기와 다른 환한 분위기가 꼭 치료받으러 온 병동 같았다. 그런데 차가운 병동이 아니라 꼭 나아질 거라고 하는 따듯한 드라마의 희망을 암시하는 엔딩 같은 곳이다. 열린 결말이지만 그래도 잘 해결될 것 같은 곳이다.
메닐컬렉션에 온다면 미술관이 단순히 예술품 소장 역할에서 확장되어 이 지역 전체에 어떻게 예술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지를 보면 더 큰 울림이 있다. 잔잔한 휴먼 드라마 한 편 같은 동네에서 나누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메닐은 예술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기본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무료이다. 입구에 들어가면 기부금을 내고 싶으면 내고 입장하라고 하는데 일단은 무료다. 직전에 다녀온 워싱턴디씨의 스미스소니언도 그렇고 다음에 갈 게티빌라도 그렇고 자신의 소유에서 모두의 유익으로 확장한 사람들이 만든 곳을 다니게 된다. 메닐부부가 예술품을 가지고 나눴다면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가진 시간을 나눴다. 친구가 학교 끝나고 같이 치과 가자고 하면 같이 가서 기다렸다. -친구는 교정을 해서 3주에 한 번씩 치과를 갔다.- 같이 안 가면 친구 안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거기 가서 앉아있던 나는 우리 집에서 기다리던 눈높이 선생님과 바이올린 선생님을 기다리다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혼나고 또 혼나서 그 버릇을 일시적으로 고쳤다. 친구랑 같이 집에 가는 게 너무 좋아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넘어서 버렸는데 친구는 내가 눈높이와 바이올린을 포기하고 자기 옆에 있는 것도 몰랐을 거다. 알았으면 당장 가라고 할 친구였는데 내가 그냥 기다렸다. 그 뒤 눈높이 선생님은 안 기다리게 했지만 상대방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도와버리는 성격은 안 고쳐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 된다는 걸 드디어 깨닫고 이번엔 수도꼭지 내리듯 새는 나눔을 원천봉쇄하게 됐다. 아직도 어디까지 내가 나눌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섣불리 나누지 못하는데 메닐컬렉션에서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나도 내가 나눌 수 있는 범위에서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눌 수 있는 한도를 알아야 건강한 나눔도 가능할 것 같다. 먼저 나를 알아야 공생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며 휴스턴 기록을 마무리한다.
추신
1. 메닐컬렉션을 가신다면 정원을 누려보세요.
2. 메닐북스토어도 가볼만 합니다.
3. 휴스턴에 오셨다면 남부음식도 드셔보세요.